• Venus Panorama
  • 2020. 12. 27. 01:57




  • Twelve years old

     

    엄마가 집에 돌아오래요. 그래도 서로 달에 한 번은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누구에게나 서툰 시기가 있다. 열두 살의 시어도어 콜링워즈는 유명한 조각가인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모란 대단히 커다랗고 경이로운 존재로 비치기 마련이니까. 시어도어는 평온한 성정의 어머니가 가끔 질린 듯한 얼굴로 작업실에 틀어박힌 아버지에게 말을 전하라고 할 때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의 가정은 거리를 두고 볼 때면 접근 금지 팻말이 꽂힌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부유하고 명망있는 예술계 유명인사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못지 않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학 교수까지 했던 어머니. 말 잘 듣고 얌전한 외동 아들. 또래들의 시기를 사는 것은 부지기수였고 열두 살의 나이에 시어도어가 받은 러브레터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부부는 적어도 아이에게는 친절했다. 쉽게 웃어주었고 부족함 없이 가지고 싶은 것들을 사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심미안이 발달한 탓에, 또는 그 접근 금지 팻말 안쪽에서 태어나고 만 탓에, 이 완벽해 보이는 가정에 결함이 있음을 일찍이 눈치채고 말았다. 네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전하라고 하던? 조각칼을 손에 쥐고 작업용 안경을 들쳐 올린 남자는 아들을 작업실 안으로 이끌었다. 끝나면 돌아간다고 전해라.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말라고. 언제나처럼시간이 필요한 거야. 시어도어는 왜 부모가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대신 꼭 자신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작업실에 변명 없이 발을 들일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모든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어린 그가 보기에도 아버지의 조각은 아름다웠다. 물질적인 풍요로는 채워질 수 없는 어떤 공허함을 채우기에 충분한 걸작들. 시어도어는 실망한 척하며 아버지의 죄책감을 이용해 그 작업실에 반나절 이상을 머물렀다.

     

    밀로의 비너스가 왜 그렇게 사랑받는 줄 아니?

    모든 아름다움은 결함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불완전한 존재기 때문에 완벽한 것을 사랑하지 못한단다. 열두 살 아이에게 하기에는 복잡한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늘어놓은 아버지에게 시어도어는 밀로의 비너스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조각칼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고 제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두 나라의 해전과 바다에 빠진 비너스 조각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다시 건진 비너스는 두 팔을 잃은 채였고, 시간이 흘러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걸작으로 남았다. 비너스가 두 팔을 잃지 않았더라면 그 조각은 다른 많은 무명 조각가들의 작품처럼 폐기되었을 거다. 열두 살의 시어도어는 조각칼 없이도 사람을 흠집 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너무 완전한 존재인가요? 순진한 척하며 눈매를 아래로 늘어트리고 어린아이가 묻는 일에 어른들은 종종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으니까. 사랑받을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완전한가요.

     

    Sixteen years old


    완벽한 가정을 깨지지 않는다. 균열은 파멸의 전조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아이는 가족에게 흠집을 내는 일이 자신에게 하등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이제 시어도어는 어머니의 심부름 없이도 자유롭게 아버지의 작업실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정계 인사의 자제들이 주로 재학한다는 사립 고등학교의 교복은 시어도어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어떤 증빙자료가 되었다. 그는 열두 살 때처럼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없을 만큼 부쩍 자랐고 살이 붙어 말랑했던 뺨 역시 날카롭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윤곽이 드러났다. 그는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성공 궤도를 달리는 아버지와 우아한 어머니를 등에 업은 채 좋은 성적과 잘생긴 외모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열여섯 살의 사내아이. 시어도어의 몇 안 되는 가까운 동급생들은 그를 친구라고 지칭했지만 대체로 시기하거나 지나치게 열망했다. 시어도어는 자신이 밀로의 비너스인지, 그도 아니면 너무 완벽해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인지를 늘 가만히 서서 가늠해 보았다. 그는 말을 하지 않을 때면 조금은 싸늘해 보이는 경향이 있었고, 또래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조차 시어도어의 침묵을 불편해했다. 너는 너만 잘난 줄 알지? 자신을 친구라고 지칭하며 곁을 맴돌던 아이 중 하나가 시어도어에게 그런 식으로 화를 냈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상처받고 마니까. 시어도어는 부정하거나 같이 씩씩거리는 대신 미소지었다. 네가 나보다 잘나지 않았다는 건 알지. 그가 주먹다짐을 잘 하지 못하면서도 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상황으로부터 이길 것을 장담했기 때문이었다. 별 것도 아닌 비아냥에 말려들어 온갖 욕설을 뱉고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는 동갑내기 아이를 바라보며 시어도어는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저 정도로 불완전한 것을 사랑할 순 없잖아.

     

    아버지는 학교에서 싸움을 일으킨 시어도어를 꾸짖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작업실로 데려 와 처음으로 조각칼 쥐는 법을 알려주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공부에 몰두하지 못하고 교우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자잘한 잔소리를 늘어놓던 아버지는 시어도어에게 여분의 작업실 열쇠를 쥐여주었다. 문제 일으키지 말아라. 그것은 일종의 거래였다. 유일한 자식인 시어도어가 학교에서 싸움을 일으키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는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에서도 학교에 같이 출두해야 했다. 시어도어는 작업실 열쇠를 받아들고 터진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제가 먼저 문제 일으키는 일은 없어요, 아버지. 저는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뒤엣말은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불완전해야만 밀로의 비너스가 되는지.

    작업실 열쇠가 생긴 이후로 시어도어는 아버지의 작업실에 자주 방문했다. 누가 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조각칼을 손에 쥐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는 조각에 재능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보는것에 재능이 있었지. 시어도어는 걸작을 알아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타고난 심미안에 흥미를 보였다. 시어도어가 고개를 끄덕이는 작품들은 언제나 평론가들의 갈채를 받았고 미술관의 상석에 새로운 예술계의 패러다임이라는 거창한 선전 문구를 달고 자리를 차지했다. 아버지는 이제 시어도어가 제 미완성 작품들을 덮어 놓은 벨벳 천을 들춰보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해마다 몇 센티미터씩 훌쩍 자라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었다. 그 아들이 자신의 창고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하든 간에.

     

    Twenty years old

     

    성인이 되던 해에 시어도어는 자신만의 비너스를 만났다.

    그것은 먼지 쌓인 작업실 창고 안쪽에 벨벳 천이 아닌 일반 천으로 덮여 있었다. 천을 벗겼을 때 시어도어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모든 게 어설프게 아쉬운 조각상이었다. 소년과 청년 사이의 아름답게 생긴 사내의 형상을 조각해 낸 대리석은 얼마나 오래 묵었는지 하얗다기 보다는 잿빛으로 보였다. 날리는 먼지에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 시어도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창고 언저리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 때문에 그 잿빛 조각상의 머리카락 부분이 금빛으로 보였다. 시어도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두 걸음 정도 뒷걸음질 쳤고, 들고 있던 천이 바닥에 끌려 신발 뒤축에 걸려 비틀대는 동안 조각상의 다 만들어지지 못한 손을 넘어지지 않기 위한 지지대로 쓰기 위해 붙잡았다. 서늘한 대리석에 체온이 옮겨 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시어도어는 그 순간 그 공간 안의 많은 것이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이란 종종 보고 싶지 않아도 경이와 마주하게 될 때가 있으니까.

    시어도어는 그 조각상에 천을 씌워두지 않고 창고에서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나와 아버지의 작업실을 벗어났다. 그날 밤, 오랜만에 집에 들른 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시어도어는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에게 창고에 있는 조각상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 조각상은 아버지가 조각한 건 아닌 것 같던데요.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시어도어가 말한 조각상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 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말하는 조각상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구나. 난 평범한 청년을 조각하지는 않아. 너도 알잖니.

     

    시어도어가 다시 창고로 돌아갔을 때, 사람의 체온이 옮겨붙은 조각상은 그 자리에 없었다.

     

    Twenty-six years old

     

    피그말리온은 인간으로 변한 갈라테이아를 여전히 완벽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신화는 성립할 수 없다. 밀로의 비너스와 같이 사람들은 불완전한 것들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된 갈라테이아야말로 피그말리온이 사랑할 수 있는 무언가였을 것이다. 불완전한 것들은 같은 불완전한 존재만 사랑할 수 있으니까.

     

    프랑스 영화사 한 곳이 테이튼 모던 뮤지엄을 촬영 장소로 사용하고 싶다고 협의서를 보냈다. 공문에 사인하는 것은 일개 학예사일 뿐인 시어도어의 역할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유명 배우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겠다며 호들갑인 동료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프랑스에도 미술관이라면 썩어 넘칠 만큼 많을 텐데 영국까지 오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시어도어가 이 촬영 섭외에 대해 느끼는 감상은 딱 그 정도가 전부였다.

    장소 대관이 이루어진 탓에 촬영 감독과 스태프들이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왔다. 콧대가 높은 편이 아니거나 연차가 낮은 배우들이 그 사이사이에 섞여 있었다. 시어도어는 미술관장에게 붙잡혀 미술관의 얼굴 마담격으로 끌려나와 총 감독과 악수를 나눠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꽤 나이가 지긋한 영화 감독은 시어도어의 얼굴을 마음에 들어했다. 자네 배우 해 볼 생각 없나? 시어도어는 스물여섯 해를 살면서 이 질문을 이미 지겹도록 받아왔다. 같이 끌려 나온 동료 직원이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소를 흘렸다. 시어도어는 적당히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제게 무턱대고 호의를 보이는 감독을 밀어냈다. 복잡한 인간관계의 틈이 벌어지고 지루한 형식적 대화가 소강상태에 들어섰을 때, 그는 촬영할 영화의 주연 배우라던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애쉬 무어예요.

     

    악수를 청하는 손은 분명히 대리석이 아니었다. 시어도어는 이 남자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스크린이나 브라운관 너머에서 말고, 다른 곳에서. 예를 들면 먼지가 켜켜이 쌓인 아버지의 작업실 창고 안에서. 벨벳 천도 아닌 것에 덮인 채 있던 것을 다시 세상으로 꺼낸 것은 시어도어였다. 6년 전의 일이었지만 그는 분명하게 그 조각상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움은 다행히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면면 위로 나타나지 못했다. 시어도어는 애쉬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짧은 악수는 체온이 옮겨붙는 듯한 감각을 되새겨주었다. 시어도어콜링워즈입니다. 테오라고 부르세요. 애쉬가 웃자 시어도어는 조각상이 아닌 인간의 불완전함을 그 한쪽만 올라간 입매와 왼쪽 눈이 더 많이 접히는 표정에서 쉽게 발견했다. 테오. 부르는 목소리도 완벽과는 거리가 멀 것이 분명했다. 인류는 신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작업실 창고에서 자기도 모르게 도망쳤던 때와 마찬가지로 시어도어는 애쉬로부터 두 걸음 물러섰다. 시어도어는 생각했다: 하지만 저 정도로 불완전한 것을…….

     

    피그말리온은 인간으로 변한 갈라테이아를 여전히 완벽하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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