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KQA님 커미션
왕가의 정식 혈통인 어린 공주를 제치고 여왕으로 등극한 오르키드 롤링우드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마녀’라는 단어를 빠트리는 법이 없었다. 그 여자가 분명 저주를 걸어서… 그 보라색 눈을 봤어? 그건 사람의 눈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르키드는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무거운 왕관을 머리에 이고 우아한 낯으로 저를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내려다보았다. 귀족들은 그녀를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헐뜯었고 평민들은 얼굴 한 번 알현해 보지 못한 새로운 여왕의 생김새가 분명 흉측할 것이라고 떠들기를 즐겼다. 무성한 소문들과 험담들 속에는 오르키드의 열 살 어린 남동생 이웨카 롤링우드에 대한 것도 있었다. 직통 후계는 분명 남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귀족들 중에는 오르키드와 다르게 유약하고 푸른 눈을 가진 남자가 한 명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오르키드에 대적할 무언가를 찾아내는 대신 막연하게 그 남동생 역시 죽었을 것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손속이 잔인한 여왕이 앞일에 위해가 될 만 한 제 집안 혈족을 살려둘 것이라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평민들까지도 오르키드가 어린 공주를 추방하고 제 집안의 젖먹이 사생아까지 전부 사고로 위장해 죽여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가 사생아라는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도 죽이는데 직계인 남자 형제를 죽이지 않았을 리가. 사람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함께 이웨카 롤링우드의 존재는 그렇게 잊혀 갔다.
A
이웨카는 오르키드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력에 큰 욕심이 없었다. 처음부터 쥐고 태어난 사람과 가질 수 없노라 내정된 사람의 갈망은 그 크기가 다른 법이라, 오르키드는 이웨카의 무욕을 증오했다. 너는 내가 평생을 다해 일궈놓은 것을 탄생과 함께 전부 빼앗았지. 난 빼앗긴 것을 되찾은 거야. 오르키드는 날카로운 레이피어 끝을 자신보다 커 버린 남동생의 가슴을 향해 겨누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이라고? 그 문장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웠다. 오르키드는 이제 남동생을 굳이 암살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롤링우드의 가주였고 한 나라의 여왕이 되었으며 이웨카를 제외하곤 그 빌어먹을 혈통조차 사생아 한 명까지 남기지 않고 없애버렸으니까. 싹은 잘라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으로 꽃 필지 모르는 화분은 깨트려야 한다. 하지만 오르키드는 이웨카가 고통 받기를 원했다. 죽지 말고 살아서 그 자신의 패배를 실감하길 바랐다. 그렇게 말할 거면 조금 더 이르게 내 손에 죽지 그랬니. 내 속을 썩이지 말고 간단하게 거꾸러 넘어졌다면 난 네 장례식에서 우는 시늉이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이웨카, 불행하게도… 너는 이제 죽을 수 없어. 그 말은 꼭 사람들이 말하는 저주처럼 들렸다. 마녀가 내리는 최후의 사형 선고.
이웨카 롤링우드는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북부 황무지에 유폐되었다.
차라리 죽이지 그래. 이웨카가 말하자 롤링우드는 웃었다. 스스로 죽는 건 말리지 않겠다, 동생아. 그게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구나.
B
북부 황무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했다. 먹을 것이 없으니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적었고 사람이 드무니 일할 거리 역시 없었다. 사람들은 나무뿌리를 캐서 먹거나 감자 몇 알로 온 겨울을 지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폐가나 다름없었던 전전대 왕의 북부 별장에 누군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북부 사람들은 그 누구도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몇 십 년 전에 지어진 그 화려한 왕의 별장은 망가진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그런 곳에 귀한 자가 와서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둥을 장식하던 금장식들은 도둑들과 협잡꾼들에 의해 떼어진 지 오래였고 건물 외벽에도 군데군데 도적질을 위한 구멍이 뚫려 있는 곳에서 어떻게 험하게 살아본 적 없는 자가 생을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마차 행렬도 없이 이곳에 처박힌 외지인을 사람들은 모르는 척 했다. 어차피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이방인이 죽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무너져가는 별장에서 시체나 관이 실려 나오는 일은 없었다. 뚫린 외벽은 어느 순간 마을에 둘밖에 없는 미장이들이 고용되더니 금방 고쳐졌다. 금장식이 다시 달리지 않는 것을 도둑들은 아쉬워했지만 별 말도 없이 나무 장작들과 식량을 나눠주는 얼굴 모를 새로운 별장의 주인은 가난한 북부의 사람들로부터 쉽게 호감을 샀다. 글쎄, 이번에야말로 귀한 분이 여기까지 행차하셨나보지. 북부 황무지에서 나고 자란 노파 하나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이곳까지 밀려 와서 이토록 베풀고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자인가 보아. 절름발이거나 곱추일 테야. 마을에서 가장 어린 아이가 노파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절름발이나 곱추면 안 좋은 거야? 노파가 코웃음을 치며 아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좋은 것이었으면 저 별장 안에만 처박혀 있을 리가 없지. 안 그러니? 분명 성정은 착할지라도 겉보기는 괴물 같을 게 틀림없다. 이리 대가 없이 친절한 자가 어찌 인간일 수 있겠어.
C
친절하기 때문에 괴물이라고.
이웨카는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 드물게 조금 웃었다. 절름발이거나 곱추거나 그도 아니면 더욱 심한 괴물.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유폐된 신세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존이 반란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오르키드는 이웨카에게 감시자들을 붙였다. 그들은 이웨카를 지켜주지는 않았으나 깍듯했고, 중요한 정보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오르키드가 명령한대로 별장에 이웨카를 충실히 구금해두고 있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바와 같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존재는 죽음보다 망각을 통해 더 쉽게 잊힌다. 살아서는 이 땅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이웨카는 침착했다. 예전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삶이었다. 넘치는 보급품을 북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도 선행이라기보다는 미치지 않고 혼자 여생을 보내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니까. 어차피 만날 일 없는 마을 사람들이 그 자신을 절름발이나 곱추, 괴물이라고 여긴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웨카는 읽던 책을 덮어두고는 그 말을 전해준 감시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걸 알려주는 이유가 뭐지? 이웨카가 묻자 감시자는 얼음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의 존재가 드러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될 겁니다. 저는 주의를 드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이웨카는 미소 짓는 얼굴 그대로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걱정 마. 아무도 만날 일 없으니.
괴물에게는 신부가 필요하다. 가난하고 못 배워먹은 자들이 지난 세월 별난 왕과 색마인 영주를 거치며 도달한 결론은 그랬다. 그들은 잠깐의 친절에는 호의를 보였지만 지속되는 다정함은 경계했다. 사람들은 언제든 별장에 기거하는 소문의 괴물이 이곳을 떠나거나 물자 제공을 끊을 것을 염려했다. 평생을 배곯으며 사는 자들은 배부름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견딜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부족함 없는 상태를 체험해본 자는 다음 겨울이 더욱 혹독해지면 죽어버리고 만다. 이곳에 발을 묶어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거야.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파는 젊은 처녀 한 명을 골라 저 별장으로 밀어 넣자고 말했다. 숨어든 도적이 얘기하기로는 목소리가 사내라더군. 그럼 더 간단하지. 안 그런가? 사내들은 그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그리하여 로즈 헌트는 '신부'라는 자격으로 별장에 보내졌다. 선정 이유는 간단했다. 얼굴에 흉이 없고, 적당히 어린데다가 그녀를 제물처럼 바쳐도 반발하는 자가 없다. 보호자도 부모도 없는 여자가 지금까지 이 척박하고 더러운 북부의 땅에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로즈에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로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가라니 가는 것이고 보내야 할 것 같으니 보내는 것. 감시자들은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로즈의 별장 진입을 막지 않았다. 오르키드가 이 상황을 재밌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웨카도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로즈는 이웨카가 유폐된 별장에 처음으로 발 딛은 방문자가 되었다.
D
이런 식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이웨카는 오르키드로부터 내려온 결혼 허락에 한숨만 쉬었다. 젊은 여자를 바치니 부디 앞으로도 그 은덕을 베풀어 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진상서도, 결혼을 인정한다는 승인 서류도 이웨카를 곤란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감시자들은 묻지도 않은 그 젊은 아내에 대해서 이웨카에게 시시때때로 보고를 올렸다. 로즈 헌트는 이웨카의 염려보다는 이 을씨년스러운 별장에서 퍽 잘 지내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이라고 하였으니 실외에서 실내로 잠자리가 바뀐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감시자의 보고에 이웨카는 로즈를 함부로 내쫓지도 못했다. 그녀를 내친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여자를 찾아 보낼 게 분명했다. 수도에서 지낼 때는 겪어 보지 못한 마을 특유의 관습과 원시적인 태도에 이웨카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런 짓을 하지 않더라도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각박하거나 냉정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 도대체 그런 생각은 누가 하는 겁니까? 감시자들은 이웨카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언제나와 같은 사무적인 태도로 대꾸했다. 그래도 한 번은 그 여성을 만나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법적으로 결혼은 성사되었습니다. 이웨카는 다시 한숨만 쉬었다.
이웨카가 로즈를 만나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감시자들의 닦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주 무감정하고 또 딱딱하게, 주기적으로 로즈 헌트에 대해서 이웨카에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뭘 먹었고 뭘 좋아하는 것 같으며 학문 수준은 어디까지인 것 같다, 등등. 이웨카는 만나보지도 못한 한 지붕 아래의 여자에게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낄 지경이 돼서야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감시자들을 내보냈다. 오르키드의 손에 놀아나는 기분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이웨카는 별장의 불이 다 꺼지고 난 밤에 로즈가 머무는 침실 문을 두드렸다. 노크를 세 번 하기 전에 안에서 들어오세요, 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웨카는 그녀가 제 얼굴을 봐도 자신이 여왕의 남동생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어둠 속에서도 얼굴을 가린 채였다.
당신이군요, 제 남편이.
한 명이 눕기엔 쓸데없이 큰 사이즈의 침대 위에 로즈가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이웨카는 성냥으로 협탁 위의 촛대에 불을 붙였다. 옅은 갈색머리는 불빛 아래에서 알음알음 빛바랜 장미색처럼 보였다. 녹색 눈도 꼭 그을려가는 나뭇잎 같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웨카가 침묵하자 로즈도 말을 더 잇지 않았다. 대신 긴 침묵의 공방이 이어지다 문득 이렇게 묻는 것이다. 제가 무언가 잘못 했나요? 이웨카는 할 말을 더 잃었다. 상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곤 짐작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신부는 내쫓기지 않았다. 이웨카는 로즈가 자신을 절름발이나 곱추, 그리고 괴물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러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게 없으니 실망하지도 않을 것 아닌가. 두 사람 사이의 애정 관계는 오랫동안 진척이 없었다. 부부라고 하기에도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밤마다 이웨카는 로즈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그곳에서 시간을 길게 보내는 일은 없었다. 이웨카는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과는 궤가 다른 인간이었고 본인이 원해서 온 게 아닌 상대를 안을 만큼 정욕에 미친 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로즈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상대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해 방문했다. 상대가 자신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웨카는 감시자가 아닌 타인이 이 별장에 머무르는 것이 이토록 기꺼운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밤, 초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탓에 두 사람의 드문드문한 대화 중 빛이 완전히 점멸했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로즈는 이웨카의 가려진 얼굴로 손을 뻗었다. 이웨카는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피하지 않았다. 얼굴을 가린 천 위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흉터 많은 거친 손이 눈가와 콧등을 더듬고 윗입술을 문지르는 동안 이웨카는 호흡을 참았다. 왜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나요? 로즈가 물었을 때 이웨카는 로즈에게로 몸을 가까이 숙여 입 맞추곤 속삭였다. 당신이 실망할 테니까.
E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 마세요. 금기는 종종 사람을 사로잡는다. 이웨카는 로즈가 자신을 모르길 바랐다. 유폐된 자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기대가 없어야 로즈와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웨카가 생각하기에 로즈 헌트는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된 피해자였으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모르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금기는 사람을 쉽게 사로잡는다. 안 된다고 하는 일에 사람들은 괜한 호기심을 가진다. 드러난 금기를 땅에 묻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이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로즈는 순종적인 편이었지만 이웨카의 말에 그러겠노라 확답한 바가 없었다. 그녀는 모든 불이 꺼진 밤에 이웨카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입술은 건조했고 검은 가죽장갑으로 전부 가려진 손은 상처투성이였지만 뺨만큼은 따뜻했다. 어째서요? 로즈가 물으면 이웨카는 로즈가 이해할 수 없는 대답만 했다. 당신을 실망시킬 테니까. 로즈는 이웨카가 어떻게 이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다른 그 무엇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서, 어째서 이것에만큼은 이토록 확신에 차 있는지.
그녀는 감시자들이 경고한 많은 규칙들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이웨카에게 도착한 편지들을 몰래 훔쳐 읽지도 않았고 감시자들에게 사사로이 말을 걸지도 않았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만 했고 사용인이나 금품을 원한 적도 없었다. 감시자들은 이웨카와 로즈가 잠자리를 가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로즈는 이웨카에게 이상적일 만큼 적합한 신부였다. 유폐된 자와 그에게 바쳐진 자. 아무것도 못할 처지의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시집 온 여자. 감시자들이 그들의 위험성을 점점 낮춰 보고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로즈는 이웨카의 수많은 우려와 경고를 무시하고 촛불을 켰다. 시간은 날이 밝기 전 새벽이었고 로즈의 침실에는 혹시나 들어올 아침 햇빛을 막기 위해 암막 커튼이 쳐져 있었다. 고요한 암흑 속에서 성냥이 두어 번 헛돌더니 섬광처럼 밝은 빛을 터트리며 제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로즈는 제 옆에 누운 사내의 얼굴 가까이로 그 빛을 가져갔다. 드러난 얼굴을 보기 위해 그녀가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동안 성냥불이 꼭 어디로든 번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조마조마한 기류 안에서 선명한 푸른 눈은 감기지 않은 채 로즈를 바라보았다. 나를 믿지 않는군요, 부인.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건조한 입술에서 흩어졌다. 흔들거리던 불빛이 끝으로 타들어가 사라지자 다시 두 사람 사이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웨카는 꼭 다짐하는 것처럼, 또는 스스로에게 각인 시키려는 것처럼 다시 한번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를… 믿지 않는군요. 내가 분명 실망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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