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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남자 모델을 함부로 안 쓰는 건데. 안절부절 못하는 카메라 감독과 촬영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로펠리아 블루밍은 열이 오르는 것 같은 이마에 제 손등을 올렸다. 계약금 다 받아 놓고 이제 와서 이런 문제 터트리는 건 정말 프로답지 못하네요. 최근 예쁘장한 얼굴로 꽤 마니악한 인기를 몰고 있는 남자 모델을 새로 출시할 브랜드 향수 모델로 내세운 게 문제였다. 젊은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고 임직원들 역시 모델 이미지가 향수와 잘 어울린다고 밀어붙이지만 않았어도 로펠리아는 이 향수에 고작 이런 수준의 모델을 기용하지 않았을 테였다. 마약 스캔들? 로펠리아는 너무 우스워서 오히려 웃음이 나지 않았다. 스캔들이 촬영 당일 터져 이 자식을 브랜드 모델로 기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기고만장한 자세로 나오던 모델의 소속사 사장이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할 기세로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오는 것도 웃기는 한편으로 훅 치밀어 오르는 짜증의 원인이 되었다. 위약금까지 다 받아 두세요, 하고 비서에게 전화를 넘긴 로펠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세트장에 장비까지 준비해 놓은 촬영을 오늘 진행하지 못하면 손해가 크게 날 것이 분명했다. 다른 제품이면 모를까 로펠리아의 향수 브랜드 블로썸Blossom에서 이번에 새로 출시하는 향수는 첼리스트인 제롬 아가드를 뮤즈로 삼아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실패 없이 운용해야만 했다. 제 야심작에 피해를 입히기 싫었던 로펠리아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두르고 있던 퍼 코트를 벗었다. 새 모델 억지로 구할 필요 없어요. 촬영, 제가 직접 들어가죠.
<화보가 너무 아름다워서 내보낼 수가 없다는 게 무슨 소리>
시간 맞춰 촬영장에 도착한 제롬은 모델 하나가 불미스러운 일로 참여하지 못한 마당에도 촬영 준비가 착착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촬영장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는 스태프를 붙잡고 물어보니 사장님이 직접 불참인 모델의 자리를 채우겠다고 나섰다는 게 아닌가. 제롬은 로펠리아와 함께 촬영한다는 생각에 조금 들뜨는 마음을 익숙하게 표면 아래로 숨기고 그래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 사장이 대뜸 모델하겠다고 나서면 너도 나도 싫은 얼굴을 할 법 한데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차마 제롬처럼 자연스럽게 숨기지 못한 화색이 감돌았다. 원래 모델보다 한 1억 2천 배 정도 예쁘세요. 입 발린 소리라고 하기엔 진심이 잔뜩 들어간 스태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제롬은 촬영 준비를 하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섰다. 얼굴만 겨우 보이는 먼 거리에서도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 로펠리아의 옆모습이 보였다. 제롬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예쁘게 해서 내보낸단 말이야? 안 그래도 치명적인데.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첼리스트 제롬 아가드를 뮤즈로 삼아 만든 향수인 만큼 첼로와 제롬을 한 프레임에 담은 단독 컷이 화보의 주가 되었다. 남녀공용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덕에 제롬과 로펠리아의 커플 화보 촬영도 이어졌다. 프로는커녕 아마추어 모델 직함도 달지 않은 것치고 두 사람은 화보 촬영에 지나치게 능숙했다. 허리를 껴안거나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 하는 일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고. 촬영을 보조하던 스태프들이 오히려 제 귓가를 붉히며 입 맞추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을 관망했다. 음, 이거 역시 내보내면 안 되겠는데. 제롬이 찍힌 사진들을 체크하기 위해 편집용 컴퓨터 앞에 선 채 로펠리아에게 소곤거렸다. 기껏 찍었는데 안 내보내면 되겠어요? 당신도 예쁘게 잘 나왔고. 새침하게 제롬의 말을 받아친 로펠리아도 내심 사진 속 저를 향한 제롬의 보랏빛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이거 너무 노골적인가? 그래도 이 남자 나름대로 임자 있는 사람인데.
둘의 베스트 컷 화보를 이게 무슨 일이냐 얼굴이 너무 재밌다 하고 신이 나서 편집하고 있던 에디터는 로펠리아로부터 떨어진 비공개 요청에 머리를 싸맸다. 어째서요? 이런 국가적 아름다움을 왜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시는 거죠? 이건 미의 독점이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혼자 주절주절 왜? 어째서? 하고 화보 비공개에 대해 저항하던 에디터는 갑과 을이라는 관계 속에서 사장님인 로펠리아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이언트가 안 된다는데 일개 에디터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눈물을 삼키며 제 사진 편집본 파일을 USB에 저장한 에디터는 로펠리아에게 그 USB를 건네주었다. 사장님, 그래도 이번 사진은 국보급이니 꼭 소장하세요.
<이거 사실 사이버 청첩 예고장이었잖아>
최근 사장실에 액자로 걸린 제롬과 로펠리아의 커플 화보는 비서실 내 최고의 화제였다. 가끔 로펠리아를 찾아오는 제롬의 얼굴을 알음알음 알고 있는 비서실장이야 연차가 꽤 되니 입을 다물고 봐도 못 본 척 하는 것에 도가 텄지만 그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개월 차 비서실 수습 직원이 사장실 내부에 걸린 그 화보 액자를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업로드한 일에는 악의라곤 하나 없었다. 그러니까 수습 직원의 행위는 뭐랄까, 이 척박한 세상을 조금 더 이롭게 하기 위한 자선 행위에 더 가까웠다. 애들아, 이거 봐라. 우리 블로썸 새로 출시한 향수 비공개 화보다? 하고 너희 집에는 알감자도 없지? 투로 내미는 것에 가까운 자랑. 그 직원 입장에서도 자신이 올린 게시물이 조회 수와 추천수가 폭발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징계나 권고사직의 위기감을 느낀 직원 본인에 의해 화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지만 스크랩과 캡처가 일상인 인터넷 주민들에게 게시물 삭제는 미약한 방해에 지나지 않았다. 모델 누구야? 얼굴 미친 거 아니야?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서 커플 화보 속 여성 모델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측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저거 블로썸 사장이라던데? 누가 옳은 진실을 가지고 와서 들이대도 사람들은 사장님이 어떻게 저렇게 생겨? 하고 눈앞의 진실을 개무시했다. 요정이라느니 세계를 건너 온 여신이라느니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인터넷 커뮤니티는 저거 사장님이라니까? 하고 다시 로펠리아의 얼굴이 첨부된 기사 자료와 함께 돌아온 진실의 사도 앞에서 진심임? 하는 반응과 함께 무너졌다.
제롬은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보조개 파인 웃는 얼굴로 로펠리아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왜인지 군기가 들어간 비서실장과 눈에 띄게 풀이 죽은 수습 직원의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애초에 그의 방문 목적은 로펠리아에게 있었으므로 제롬은 친절한 어조와 다르게 그들에 대해 일말의 호기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여전히 사무실 벽면에 걸린 자신과 로펠리아의 커플 화보를 곁눈질하며 푹신한 사무실 의자에 몸을 기대앉은 채로 저를 맞이한 로펠리아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제롬은 로펠리아의 책상 위에 놓인 연예부 신문을 집어 들었다. ‘향수 블로썸 모델, 사장으로 밝혀져 연일 화제… 본인의 뮤즈와 커플화보 유출? 네티즌 술렁’
약혼녀가 뭐라고 안 해요? 제롬이 다가오자 로펠리아가 제롬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어깨선 위로 흘러내린 탓에 작은 움직임에도 사락거리며 흔들렸다. 제롬은 괜히 프랑스식으로 로펠리아의 턱을 잡아 서로의 뺨과 뺨을 맞댔다. 짧은 비쥬 뒤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체면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차라리 빨리 파혼하자고는 하던데요. 제롬은 로펠리아의 손을 잡아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으켰다. 결혼이라는 매개로 묶으면 로펠리아가 과거처럼 갑자기 사라질 일도 없을 텐데. 음습한 속마음을 드러내는 대신 은근한 미소만 띄운 제롬이 청혼이라기엔 지나치게 평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약간의 애교가 섞인 목소리였다. 리아, 결혼할까요? 로펠리아가 그 질문에 새침하게 대꾸했다. 당신 하는 거 봐서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게 짧은 버드 키스였으니 말에 신빙성은 없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새로 발행된 연예부 신문 1보에는 로펠리아와 제롬의 결혼 소식이 실렸다. 로펠리아와 제롬의 와꾸합을 체할 지경으로 허겁지겁 먹다가도 제롬에게 로펠리아가 아닌 다른 약혼녀가 있다는 소식에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먹은 걸 다 토해냈던 과거의 네티즌들이 다시 이게 무슨 일이냐? 하며 화보 사진을 찾아 연어처럼 인터넷 커뮤니티를 거슬러 올라왔다. 야, 애들아. 이거 향수 화보 아니고 웨딩 화보 유출이었나 보다. 미어캣은 속았습니다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인 네티즌들이 너도 나도 사이버 청첩 예고장 - 유출된 커플 화보 - 를 들고 온갖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제 저 유전자 사이에서 태어날 2세 얼굴에 내 모든 주식 다 꼴아 박는다.
제롬, 갑자기 웬 재채기예요?
글쎄… 어디선가 벌써 엄청난 얘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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