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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조 보이그룹 소속 범필승의 유구한 빠순이인 김 양은 한평생 잘 챙겨보지도 않았던 연말 방송 3사 시상식을 챙겨 보기 위해 귤 바구니를 품에 안고 TV 앞에 앉아 있었다. 매년 아이돌들 나오는 가요대상이나 보던 애가 무슨 일이냐고 주말 연속극 애청자인 모친이 김 양의 옆에 자리를 잡자 세 개째 귤을 까먹으며 우리 오빠 언제 나와 하던 김 양이 조금은 퀭한 낯으로 대꾸했다. 엄마, 우리 필승이… 올해 연기했잖아. 우리 애 완전 연기돌이야. 나 내가 무협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우리 필승이… 연기하는 거 보니까 나 무협 좋아하더라. 딸이 저보다 과년한 사내를 ‘우리’ 필승이라고 칭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보던 김 양의 모친은 혀를 쯧쯧 찼다. 어휴 저거 저거 아이돌 언제 그만 쫓아다니려나 몰라.
<우리 필승이… 효도하는구나?>
방년 22세 상큼 햇살 컨셉 보이그룹 출신 아이돌 범필승이 갑자기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 하다가 매니저 손에 이끌려 울며 겨자 먹기로 연기 학원을 다니게 된 데에는 커다란 비하인드가 존재했다. 소속사 사장님이 드라마 감독이랑 어쩌다 술 좀 마시다가 자기도 모르게 - 사장님은 취해서 기억이 안 나신다고 했다. - 어! 그래! 우리 애들 중에 연기 잘 하는 애 있어! 하고 외쳤던 탓이었다. 안 그래도 무협물 장편 드라마의 배역을 맡아 줄 젊고 상큼한 와꾸의 배우 아니고 흥행 좀 시켜 줄 뉴-페이스가 필요했던 드라마 감독은 정식 미팅도 아닌 술자리에서 어? 그래? 하면서 취한 소속사 사장님을 상대로 드라마 출연 계약서를 작성했다. 저 그래서 이렇게 연기하러 가요? 저희 이제 컴백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요. 범필승이 그런데 왜 하필 전가요? 라고 묻기도 전에 소속사 사장의 화려한 업보를 듣고 온 필승의 매니저는 다른 멤버들을 치우고 필승을 딱 끌고 나와 다시 연기 학원에 처박았다. 필승아, 무협 말투 이틀 안으로 익혀서 돌아와라. 원래 호랑이는 새끼를 강하게 키우는 법이다. 매니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필승은 슬프게 중얼거렸다. 형, 그거 호랑이 아니고 사자 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의 아이돌 출신 배우 발연기에 대한 우려 및 걱정과 달리 범필승은 연기에 그럭저럭 재능이 있었다. 소속사 사장님이 그래, 필승이 네가 잘 할 줄 알았다 이게 나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어쩌구를 시전하는 동안 범필승은 촬영장에서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누구나 다 아는 대배우인 구만상 옆에 끼여 아이구 우리 필승이하고 촬영장 내에서 온갖 예쁨을 다 받았다. 어디서 아이돌이 굴러 와서 배우 일자리 채간다고 모난 돌 정 맞듯이 사람들이 텃세라도 부릴 줄 알았던 필승은 자신의 예상과 너무나도 다른 촬영장 분위기에 얼떨떨하면서도 사랑받는 사자 새끼가 되어 만상의 옆구리에 끼여 있었다. 필승아, 내가 보기에 넌 연기에 재능이 있다, 로 시작해서 조카뻘인 필승에게 귀엽다 예쁘다 어화둥둥 우리 필승이 누가 힘들게 하면 삼촌한테 말만 해 하고 어르고 달래는 만상의 행태는 곧 동료 배우들의 입에서 입으로, 예능에서 라디오로, 인스타그램에서 팬 계정으로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하하! 두 사람 정말 삼촌과 조카 같네요, 하고 온갖 드라마 홍보 방송 및 라디오에서 구만상과 범필승의 오손도손함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팬 커뮤니티에서 우리 필승이… 효도하는구나? 하며 범필승의 유교 의식을 높게 사는 동안 그 대-원로 배우 구만상과 상큼-아이돌 범필승은 2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 넘어 연애를 시작하고 있었다. 사랑엔 국경도 성별도 연애도 없는 거라고 옛날 어른들이 그랬으니까. 구만상의 짬과 네임 값으로 만상 혼자 쓰는 널찍한 배우 대기실 안에서 자기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20살 연상과 입술을 조금 부비고 남몰래 럽스타 게시물도 조금 올린 필승은 자신을 보고 효도 천재 유교의 현신이라고 감동 받는 제 팬들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우리 팬들 미안해. 이거 사실 효도 아니고 사랑이야. 매니저 형도 미안. 저 사실 사자 새끼 아니고 호랑이 새끼였나 봐요.
<더 큰 대한민국이요 엄마 전 정말 모르겠어요 과년한 사내가 저러는데 제가 어떻게 오해를>
물론 모든 팬들이 필승과 만상의 작태를 보고 우리 필승이… 효도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온갖 상상을 다 하는 후죠들이 넘쳐나고 언제나 현실은 상상을 이기기 마련이지 않던가? 팬 커뮤니티에 매번 구만상이랑 범필승 무조건 사귄다니까 저게 삼촌과 조카 사이면 우리 부모님은 형제 없어 같은 글을 꾸준히 올려 필승의 유교 관념을 높이 사는 팬들에게 뭇매를 맞던 개방형 사고 GIRL 김 양은 연말 시상식에서 베스트 커플 상을 타는 만상과 필승 커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니 한국인들아 너희는 저 구만상의 꿀 떨어지는 눈빛이 어? 조카 보는 눈으로 보이냐? 베스트 커플 상 트로피를 들고 서로의 덕이라며 수상 소감을 말하는 정장 차림의 장성한 사내 둘을 보며 눈물 흘리는 - 귤은 왜 또 먹다 말고 - 김 양을 보며 옆에서 지켜보던 김 양의 모친은 한숨을 쉬었다. 얘는 누굴 닮아서 이래. 모친의 한탄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남남 베스트 커플 상을 수여하는 더 큰 대한민국 아래에서 정신을 못 차린 김 양은 제 앞의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저게 효도면 난 불효자라고! 맞는 말을 하는 김 양을 혀를 차며 바라보던 모친이 김 양의 입에 남은 귤을 쑤셔 넣었다.
자정이 넘어 새벽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꽤 길고 지루했던 연말 시상식을 무사히 마친 필승은 자연스럽게 만상의 밴에 동승했다. 삼촌, 저희 같이 사진 한 번 찍어요. 베스트 커플 상도 받았는데. 밴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핸드폰 조명을 켜고 트로피를 든 채 만상 옆에 붙어 사진을 연사로 찍어대던 필승은 핸드폰 화면에 비친 만상의 시선이 오로지 저를 향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웃고 말았다. 이거 너무 티 나지 않나, 역시? 웃는 필승을 이유도 모르고 가만히 바라보던 만상이 그대로 손을 들어 필승의 잘 세팅된 시상식용 머리 스타일을 흐트러트렸다. 왜 웃는 거야? 만상이 묻자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혼이 담긴 머리가 망가졌는데도 하등 신경 안 쓰는 낯으로 필승이 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인스타에 몇 장은 못 올리겠다 싶어서요.
크리스마스 캐롤도 한 물 간 연말의 밤을 아이돌 덕질로 지새우고 있던 김 양은 필승이 올린 새로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그만 누워있던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펄쩍 뛰어 오르고 말았다. 미친 세상 사람들 이것 좀 보세요 이 사람들 뭐 자기들끼리 보이그룹인 것도 아니면서 같은 밴 타고 퇴근해요 하고 집 안에서 쩌렁쩌렁하게 소리칠 수 없었던 김 양은 필승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달린 유교 필승 최고^^ 같은 댓글들을 보고 뒷목을 잡았다. 애들아 너네는 이게 효도라고 생각해? 지금 저 남자 눈빛이랑 머리 망가진 거랑 뒤에 배경이 같은 차 안이라는 게 보이지 않아? 너희 자꾸 우리 부모님 형제 없는 사람으로 만들 거야? 온갖 주접을 조리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속으로 애써 삼키며 눈물 흘리던 김 양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필승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댓글을 적고 말았다. 우리 필승이… 효도도 연애처럼 하나 봐.
김 양은 이때까지만 해도 필승이 삼촌이랑 나 너무 티났나 봐 역시 들켰네 하고 혼자 아찔해하는 동안 자신의 고작 한줄 쓴 댓글이 자고 일어나보니 하트 수십 만 개를 받고 공론화 되어 팬 커뮤니티에 '패륜_망상_총집합_인스타댓.png' 따위로 캡처 돼 돌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니 볼 뽀뽀 사진이 올라와도 효도라고요? 베스트 커플 상을 수상해 놓고 효도라고요? 김 양은 정말 억울해서 살 수가 없었다. 더 큰 대한민국.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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