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는다는 걸 가장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누구일까. 만일 정말로 성경 말씀과 같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지는 중에도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땅속 6피트 아래에 묻히면 사람은 어떻게 돼? 어린 아만다가 물었을 때 시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더 좋은 곳으로 가겠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이제 입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아만다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A
빅토리아에게 열여섯 번째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시오 로가 죽었다. 조용한 죽음이었다. 병원에 입원할 만큼의 잔병치레도 없었고 다이애나가 앓던 관절염도, 치매 증상도 없었다. 니나처럼 갑작스럽게 발견된 암이 사인도 아니었다. 모두 노쇠한 그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다정한 성정을 죽음 직전에도 잃지 못해 자신을 상실할 사람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녹내장 때문에 안경 없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 그의 녹색 눈은 제 임종을 지키러 온 모든 사람에게 머물렀다 떨어졌다. 회백색으로 변한 속눈썹이 감기는 장면은 꼭 일부러 천천히 재생한 동영상처럼 느리게 흘렀다. 아만다는 죽어가는 사람의 침소 앞에서 우는 제 나이 또래의 남자를 보았다. 다들 울지 마. 시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고 그의 손에는 너무 많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죽음은 보이지 않게 켜켜이 쌓여 사람의 피부 위를 장식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슬픔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시오의 사려깊음과는 별개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타인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만다는 딸인 빅토리아가 지나가듯이 제게 물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사람은 죽으면 땅 아래 묻히잖아. 그럼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아만다는 간단하게 시체들은 썩어버리지, 라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들었던 답을 그대로 도용했다. 글쎄, 더 좋은 곳으로 가겠지. 빅토리아도 아만다의 나이가 될 때쯤이면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빅토리아는 입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그래도 더 못 보게 되는 건 싫어. 다시 볼 수 있을 때까지 너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잖아. 내가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될 때쯤이면, 나도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 그건 있지, 엄마. 정말 무서운 일일 거야.
B
카일란이 돌아왔다고 말했을 때 니나는 이번에야말로 시오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니나가 보기에도 시오와 카일란은 유별난 관계였다. 니나는 시오가 보니페이스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지 못했다. 찰리가 죽었을 때 시오는 니나와 다이애나에게는 최대한 늦게 찰리의 죽음을 통보했다. 시체 확인은 다이애나와 시오만 했다. 니나가 따뜻한 집안에서 간소하지만 부족함 없는 저녁 식사를 남편과 함께할 때 그녀의 남동생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후덥지근한 열기를 정통으로 맞으며 권총을 손에 쥔 아버지를 말리고 있었다. 제발 죽지 마. 제발 나를 포기하지 마. 한 번만이라도 나를 이겨 줘. 니나는 시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니나 로라면 보니페이스를 나서는 순간 그곳과 관련된 모든 인연을 끊어버렸을 테니까. 자신을 포함한 보니페이스 출신 사람들의 유구한 문제는 이것이었다. 떠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 니나는 시오가 아프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한순간의 트라우마로 쉽게 망가지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 동생이 나이 들어가는 와중에 유년기와 청년기에 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병들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니나는 시오에게 상기시켰다. 아니야, 시오. 카일란은 죽었고 넌 거의 30년을 혼자 살았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렇지만 카일란은 정말로 다시 돌아왔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흐르는데 그 자신만 멈춰 있었던 것처럼. 시오와 카일란은 그 시점에 친구가 아니라 후견인과 피후견인 정도로 보였다. 두 사람은 시오의 방 두 칸짜리 맨하튼 아파트에서 다시 동거하기 시작했다. 정원이 없고 부엌과 거실이 트여 있으며 두 사람이 살기에는 살짝 좁은, 그리고 관리비가 유독 비싼 아파트. 니나는 카일란이 돌아온 이후로 두 달 정도 시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정말 무덤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언젠가 찰리도 돌아올까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니나에게 먼저 다시 전화를 건 것은 시오였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누나. 니나는 묻고 싶었다: 그럼 카일란은?
다이애나는 시오 주변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쉽게 돌아온 카일란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다이애나는 요양병원에 찾아온 카일란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카일란을 만나고 몇 개월 뒤에 다이애나는 누구에게도 작별인사 한 번 없이 돌연 노령으로 숨을 거뒀다. 요양병원 간호사는 그녀에게 어떤 유서도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유품 정리 중 나온 손뜨개 아기 모자는 아만다와 빅토리아에게 증여되었다. 시오는 다이애나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 대신 평소 기세등등하기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던 니나 쪽이 눈물을 보였다. 다시 돌아올까? 니나가 관 위로 쏟아지는 흙을 바라보며 물었고 시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니나는 묻고 싶었다. 넌 정말 괜찮았어? 그 모든 순간에. 내가 안락한 집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동안 너는 그 도로 위에서 빌고 있었잖아. 제발 죽지 말라고. 사라지지 말라고.
C
너희 가족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카일란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을 때 시오는 졸아드는 스튜를 그릇에 나눠 담으며 어쩔 수 없지, 하고 응수했다. 우리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는지 너도 알잖아. 게이 부부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원조교제하는 사이로 보일 거라고.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카일란은 웃었다. 신고당하면 내가 네 조카라고 변명해 줄게.
맨하튼 아파트 근처 윌마트는 대대적인 공사에 착수했고 조금 더 먼 거리에 위치한 대형 마트는 독일인이 운영한다는 말과 함께 플라스틱 백을 제공하지 않았다. 레토르트 식품을 사지 않게 된 이후로 시오는 종종 식료품에 나가는 지출이 너무 커졌다며 툴툴거렸지만, 다니는 대형 마트가 윌마트보다 부엌 도구가 많다는 말을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말했다. 카일란은 시오가 그럴 때마다 세월을 느꼈다. 시오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많은 계단을 오르지 못했고 운전을 할 때면 혹시나 사고를 낼까 도수가 높은 안경으로 바꿔 끼웠다. 거실에 있던 TV는 어느 순간부터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대신 시오는 젊은 시절처럼 카일란이 말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네 누나랑 조카는 날 보고도 절대 먼저 말은 안 걸잖아. 스푼과 스튜 그릇이 부딪혀 가벼운 마찰음을 냈다. 시오가 대답했다. 사실 별로 신경 안 쓰면서. 다시 웃음 소리. 아니거든. 네 가족이니까 신경 쓰지, 당연히.
D
빅토리아는 시오를 어려워했다. 작은 할아버지야, 라고 아무리 설명해줘도 시오와 자신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옆에 사람은 할아버지 아닌 걸. 빅토리아는 카일란과 시오가 부부라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빅토리아와 같았다. 아만다는 유독 시오를 어려워하는 제 딸 때문에 꽤 진지하게, 그리고 정중함을 가장해서 시오에게 자신의 집을 방문할 때는 카일란과 동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인과율에서 벗어난 독특한 존재에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필멸자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기이함. 니나는 카일란을 모르는 척 했고 아만다는 카일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시오는 두 사람을 탓하거나 그에게 잘 해 달라고 지나가는 말 한 번 하는 일이 없었다. 대신 카일란과 동행하지 말아달라는 아만다의 요청에 그럴게, 하고 아만다를 몇 년 동안 찾아가지 않았다.
아만다는 카일란 드라이의 검은 눈이 신경 쓰였다.
가족보다 중요한 관계라는 것이 시오에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만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시오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선이 확실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어려워했다. 아만다는 언제나 자신이 시오의 선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만다의 전화 한 통이면 시오는 언제든 그녀를 데리러 와 주었다. 어머니나 남편보다도 의지할 수 있는 삼촌의 존재. 아만다는 니나와 다이애나에게 헌신적인 시오를 보며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뿐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단편적인 것에 매몰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기 마련이니까.
왜 오지 않아? 아만다가 물었을 때 시오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빅토리아가 날 어려워하니까. 아만다는 그게 변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카일란 때문이지? 그 남자. 시오는 정확한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시오, 정말 이상해 보이는 거 알아? 원래 이러지 않았잖아. 아만다가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을 때 시오는 아만다의 기대와는 다르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네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야. 우린 원래 그랬어. 그냥…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거야. 아만다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당신만 기억하는 그 ‘제자리’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아만다는 거울에 비친 제 눈이 검은색에 가깝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시오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시오, 차라리 우리에게 이 모든 걸 받아들이라고 강요해. 그게 더 자연스럽잖아. 난 당신이 이럴 때마다…… 시오는 아만다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게 두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난 너에게 그러지 않을 거야, 아만다. 그 누구에게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난 너와 카일란을 다른 방식으로 소중하게 대하고 있어. 빅토리아에게 내 사랑을 전해주렴. 이번 생일에도 만나러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결혼 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시오는 쓰러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일란이 근처에 있었으므로 병원으로 곧장 이송되었고 그에게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니나와 다이애나가 죽은 이후 퍽 많은 이별에 익숙해진 아만다가 시오를 찾아왔을 때, 시오는 훌쩍 자라버린 빅토리아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저번 생일에 만나러 가지 못해 미안해. 시오가 말하자 빅토리아는 구불구불한 금발이 흔들리도록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꽤 조용해 보였지만 의젓했고, 어딘지 기세등등한 니나나 아만다보다는 시오를 닮아 희고 차분했다. 아만다는 수척해진 카일란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빅토리아는 이제 카일란과 시오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만다는 카일란에게 여전히 먼저 말 걸지 않았다.
E
당신을 기억해요.
시오가 땅 밑 6피트 아래에 묻힐 때 카일란은 울고 있었다. 아만다는 카일란과 시오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니나가 느낀 기시감을 그 딸인 아만다가 물려받아, 그저 시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관계가 카일란이고 자신이 그를 넘지 못한다는 것을 막연히 깨달았을 뿐이었다. 한 명의 죽음 뒤에야 사람들은 망자의 삶을 반추한다. 아만다는 자신이 시오에 대해 생각보다 아는 게 없었다는 걸 인정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해요.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일곱 살의 기억은 휘발되고 나면 잘 돌아오지 않는 성질이니까. 그러니까, 나에게도… 마지막 유언이 뭐였는지 내게도 말해 줄 수 있나요? 아만다가 물었을 때 카일란은 울어 붉게 짓무른 눈가로 아만다를 바라보았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얼굴 위로 닮은 슬픔이, 그리고 전혀 다른 검은 눈들이 마주쳤다. 카일란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어설프게 잠겨 있었다. 아만다는 시오가 남긴 마지막 말을 들었다. 그녀가 떠올리기에, 이것은 아주 이상하고 슬픈 구절이었다: 잘 지낼게, 라고…… 그러니까 너도 잘 지내야 해, 그랬지.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자.
너무 늦으면 안 돼.
기다릴게.
사람이 죽는다는 걸 가장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누구일까.
땅속 6피트 아래에 묻히면 사람은 어떻게 돼? 어린 아만다가 물었을 때 시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더 좋은 곳으로 가겠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이제 입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아만다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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