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반주자가 뽑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툰 오르간 반주와 함께 성가대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목사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가대 가장 앞줄에 선 주는 최선을 다해 찬송가 301절을 불렀다. 몇 명의 원로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예배당 앞줄에 앉아 그런 주를 채점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래서 제 점수는요. 신실함 부족으로 75점 드리겠습니다.
K장녀 이야기 – 주 편
주는 사람들이 제 이름을 들을 때마다 기독교야? 라고 물어오는 것이 슬슬 귀찮아졌다. 어렸을 때, 정확히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시절 사이, 주는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했다. 굳이 기독교적 이름을 지어야만 한다면 하은이나 은혜 정도로 충분했을 텐데. 이렇게 대놓고 ‘나 기독교인이요’ 하는 이름이라니. 따지자면 주의 종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정해진 채 태어난 것과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목사였고 가족들 전부가 기독교인이었으니 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의 두 동생들이 가진 종교 인생도 세포 시절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잘 짜인 그물처럼 고리가 걸려 있었다. 물론 두 동생들은 장녀인 주보다 임무가 막중하지는 않았다. 기독 장녀로 태어나 큰 교회에서 독립해 자신만의 교회를 가진 목사 아버지를 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사람들은 잘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했다. 주는 그렇게 활달한 성격도 아니었고 나서기를 좋아하거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교회 행사부터 수련회, 청년부 모임이란 모임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무조건 사회자나 참여자로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주일이 되면 다른 친구들이 다같이 만나는 자리에 나갈 수도 없었다. 독립 교회의 목사 자녀인 그녀가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주에게 무슨 좋은 일이 생기면 부모님과 그녀의 친척 어른들은 모두 그것이 주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 주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럼 이름이라도 하은이라고 짓던가, 하는 생각을 열 번에 두 번 정도 했다. - 덕이라고 했다. 아멘, 아멘. 주는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신의 은총이 완벽하게 실재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이번 주에 해외 선교하시는 친척분들 돌아오시니 일정 비워둬라.
기독교 사회는 튀어나온 돌을 싫어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걸려서 화형을 당했다. 예수님도 그런 식으로 죽여 놓고 3일 만에 살아나니 새로 배우고 깨달은 게 없는 모양인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되거나 믿음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나오면 꼭 어떻게든 잡아 죽이려고 기를 썼다.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신 그들의 신이 부끄럽게도 일단 손에 돌이 쥐어졌다 하면 무조건 던졌다. 동성애자는 고칠 수 있는 병이다, 여자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뤄야 한다, 목사 자녀는 주일 예배에 빠져서는 안 된다……. 주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안전하게 다른 목사 자녀들처럼 그래요, 그 말이 전부 옳습니다, 하고 집단에 동화되는 것과 혼자 툭 튀어나온 돌처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요즘은 목사 자녀 중에 아이돌 출신도 있다고요, 예수님이 열 받아서 부활하시겠어요! 같은 소리를 하는 것. 그러나 주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주의 부모님은 주에게 종교를 강요하거나 사상을 세뇌시키는 대신 더 훌륭하고 고상한 방법을 찾아냈다. 아이에게 죄책감을 심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얌전히 굴었다. 자신이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고, 자신의 존재로 인해 부모가 힘들게 살고 있음을 계속해서 인지시키는 일. 주는 힘겹게 독립 교회를 운영하는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실책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일요일에 신촌에서 만나자, 다른 애들도 다 나온대. 친구의 메시지에 주가 답장을 보냈다. 나 일요일에 안 되는 거 알잖아. 자기희생이야말로 기독 장녀의 본분이었다.
중학교 때 주는 목사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급에서 따돌림 당하는 남학생을 기꺼운 마음으로 챙겨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피곤한 얼굴로 주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주는 착하니까 해 줄 수 있지? 주에게 ‘착하다’라는 말은 일종의 족쇄였다. 하나님이 자비로운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자비로운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그것을 같은 맥락으로 읽어냈다. 따돌림 당하던 남학생 K는 의무감으로 뭉쳐 제게 다가온 주를 영리하게 계급 상승, 또는 상황 탈출의 밧줄로 이용했다. K는 자기를 괴롭히는 다른 남학생들에게 주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주가 자기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지, 또 가끔은 주가 자신과 짝궁이 되고 싶어 하고 손을 잡기도 했었노라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시 돌이켜 보면 주는 K의 행동이 집단 괴롭힘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주는 그를 이해해 보려고, 공감해 보려고 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용서해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질 나쁜 아이들에게 들어간 주의 이야기는 와전되고 와전 되어 K와 주가 사귄다거나 잠자리를 같이 했다거나, 하는 식의 천박한 소문으로 변질 되었고 K가 다시 학급에 소속될 즈음해서 무리에서 소외된 것은 주가 되었다. 직접적인 정신적 고통은 종교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은 도움을 주는 대신 곤란한 얼굴로 주에게 말했다. K가 널 좋아해서 그랬나 보다. 그래도 이해해 줄 수 있지? 주야, 너는 착하잖아. 주에게 중학교 시절은 지옥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학년 말에 K는 주에게 쪽지를 남겼다.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워.’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주는 K를 한 번도 좋아해 본 적 없었다.
착해야 한다라는 강박과 종교에 대한 신념, 부모에 대한 죄책감 등이 지금의 주를 창조했다. 주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착실하게 고시와 취업 준비를 병행했다. 바쁜 와중에도 주일 예배에는 무조건 참석했고 청소년부 모임이나 성가대 활동에도 성실하게 얼굴을 비췄다. 장로님 한 분이 주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딸이 참해. 우리 아들이 10살만 젊었어도 내가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는 건데. 그리고는 옆에 서 있던 주에게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친구는 없고? 주는 그런 질문에 웃기만 했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욕을 먹을 테였고 없다고 해도 흉이 될 것이 분명했다. 요즘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하고 웃어넘기는 게 최선이었다. 게다가 장로님 아들은 10살이 어려진다고 해도 30대 후반이었다. 20대인 주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않은가. 신도들이 다 빠져나간 예배실을 정리하는 동안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주는 그 한숨에 스스로가 오늘 무슨 대답을, 어떤 행동을 잘못했는지 계속해서 되돌아보아야 했다. 네가 참아. 네가 견뎌. 넌 그럴 수 있지? 너 목사 딸이잖아, 네가 누나잖아. 넌 괜찮잖아. 견디는 것은 자신인데 왜 해내고 나면 다 하나님의 은혜인가? 주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정말 신약과 구약의 존재만큼 모순적인 일이었다.
K는 이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명문대학교에 진학했다. 주는 그 사실을 SNS 계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는 K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받지 않기 위해 주변인에 대한 정보가 추천으로 뜨는 모든 SNS 어플을 지워 버렸다. 아마 K는 주를 팔아 넘겨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아갈 것이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잘 졸업하고 거지같은 학점으로도 주보다 쉽게 취업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공평하다면 애초에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드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담만 존재했다면 세상의 억울한 일이 절반은 줄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담 내에서 서열화를 해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담이 이브가 제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근원부터 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너 정말 K 좋아해? 주는 자신이 인생 전반에서 중학교 시절의 경험을 절대로 지울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면류관 때문에 성흔이 생긴 예수처럼 평생의 상처로 안고 가야 할 순간으로 남았다는 것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부 그 순간을 별 것 아닌 어린 시절의 일로 잊고 묻어 버릴 것도 알고 있었다. 네가 참아. 네가 견뎌. 세상의 모든 기독 자녀는 모두 세미 예수란 말인가?
해외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친척들이 한국 명절을 맞이하기 위해 모두 귀국했다. 기독교인이기 전에 우리는 한국인이라며 절만 안 했지 제사는 꼬박꼬박 챙기는 어른들이 주는 가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일에도 그렇게 기도를 드리면서 굳이 명절날까지 새벽 기도 감사 기도를 드리는 심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 하나님은 이 시도 때도 없는 기도에 질려 알림 음소거를 해둔 탓에 현대에 들어 더 응답이 없으신 걸 수도 있었다. 공항으로 일찍이 친척들을 마중 나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뒷좌석에 앉은 주를 향해 주의를 주었다. 친척 어른들한테 예의 바르게 굴어라. 해외에서 얼마나 고생하시는 분들이니. 주는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제 사촌 동생을 생각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간 거라고 큰소리를 떵떵치는 친척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영어밖에 할 줄 몰랐다. 영어만 할 줄 아는 아이들이 그 친척들의 가장 큰 자랑이었다. 글쎄, 우리 애가 이번에 미국 대학 어디 어디를 갔는데, 하고 주절주절 자식 자랑을 늘어 놓을 친척들을 생각하니 주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자기 부모랑 언어가 안 통해서 대화도 잘 안 되는 것이 대체 뭐가 자랑이란 말인가? 선교를 위해 나갔다는 친척 어른들은 하나같이 본인 자체는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도 울고 갈 만큼 보수적이면서 자기 자식들이 개방적인 것에 대해서는 떠벌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는 그 자랑 끝에는 꼭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게 다 하나님의 보살펴 주신 덕이지.
친척 어른들을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주는 애써 웃으며 어른들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이제 네가 몇 살이지? 라는 간단한 질문부터 회사는? 남자친구는? 청년부 모임은? 성가대는? 하는 상세한 질문까지 주를 향해 쏟아졌다. 주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최선을 다해 어른들을 상대했다. 그 일련의 고행이 지나고 나면 어른들은 모두 주를 칭찬했다. 참 요즘 애들 같지가 않아. 우리 주는 정말 시집 잘 가겠다. 얼굴만 좀 가꾸면 맏며느리 감이야, 아주. 누구 하나가 그 칭찬을 툭 던지면 그 근처에서 또 말문이 트였다. 역시 맏딸은 살림 밑천이지. 삼촌이 남자 하나 소개 시켜 줄까? 어쩌고저쩌고. 주는 현대인의 속물적이고 빈번하며 진심 없는 기도를 음소거 해 버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말을 흘려넘겼다. 이 순간조차 주에게는 성흔처럼 남을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별 것 아닌’ 말로 흘려 보낼 이 순간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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