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였다. 88만원 세대가 성공한 이상적인 케이스들 중 하나. 소시민에서 아등바등 바닥부터 기어올라 기득권층에 발을 붙이게 된 유의 아버지는 자신의 삼남매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는 부모 잘 만나고 편하게 살아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삼남매 중 맏딸인 유는 아버지가 말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정말로 없었으나 아버지의 그 편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이미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서운 줄 알고 있었다.
K장녀 이야기 – 유 편
유는 자신이 싫은 소리를 할 때마다 따라붙는 ‘배가 불러서’ 라는 수식어가 싫었다. 사람을 만나면 웬만해서는 제 집안 배경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지만 강남 고학력군 집단이 대체로 그렇듯이 그 바닥에 그 나물이었으므로 완벽하게 숨기기도 어려웠다. 소위 말하는 강남 차일드로 유년 시절을 보낸 유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특목고에 진학했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엘리트 루트를 밟아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대학들 중 하나인 K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는 공부라는 분야에서만큼은 인풋이 있는 만큼 아웃풋이 나오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아웃풋이 더 좋게 나오기도 했고. 다른 강남 외 출신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자기 시간을 가지지 못하거나 돈이 부족하다고 앓는 소리를 할 때도 유는 20대 초중반답지 않게 어느 정도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고 누리고 싶은 것들은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풍족함에는 항상 전제조건이 붙었다. ‘단, 아무리 불합리해도 아버지에게 얌전한 딸로 복종할 것.’
어떤 사람들은 강남 차일드에 유복한 집안 출신, 게다가 고학력자인 유에게 부모님께 고개 좀 숙이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유난이냐는 태도를 보였다. 유가 특목고에 합격하고 K대 영문학과에 현역으로 붙는 동안 아버지는 칭찬이나 기쁨보다는 마땅히 내 자식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태도로 유에게 말했다. 내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어서.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바로 손아래 여동생이 이화여자대학교에 갔을 때는 혼내기까지 했다. 네 언니는 K대에 갔는데 너는 고작 이화여대밖에 못 갔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유는 가끔 자신과 나이 차가 꽤 나는 남동생이 어느 대학에 가고 그걸로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분명하게 유의 경우처럼 아들의 대입을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고 유의 여동생 때처럼 아들을 꾸짖지도 않을 테였다. 유도 여동생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집에서 복종하지 않고 아버지와 ‘동등한 인격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유의 막내 남동생뿐이었다. 그것은 유의 남동생이 타고 나기를 예수처럼 신에게 점지 받고 태어나서가 아니라 단지 그가 여자애가 둘 딸린 집의 막내로 태어난 남자아이였기 때문이다. 막내 남동생이 대입에 대한 걱정을 자신에게 털어 놓았을 때 유는 반쯤은 애정을 담아, 그리고 반쯤은 냉담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 넌 재수라도 시켜 주실 테니까.
유의 친할아버지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유의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유와 유의 여동생을 깨웠다. 아버지가 장남이었으므로 유의 집이 따지자면 큰집이었지만 사업상으로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고모 네가 제사를 가져간 지 오래였다. 고모들이 제사를 가져갔다고 해도 결국 제삿날에는 꼭 준비를 하러 고모 집에 들려야 했으므로 유는 짜증을 속으로 집어 삼키며 세수를 하고 옷을 주워 입었다. 대충 손에 잡히는 것들을 걸쳐 입는데 엄마가 문간에 서서 꼭 한마디를 거들었다. 너는 뭐 그런 거적때기 같은 걸 입어? 고모들 보기 부끄럽게. 거적때기가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스커트인데. 엄마는 무늬만 화려하면 무조건 유의 옷을 보며 혀를 찼다. 참나, 옷을 그렇게 화려하게 입을 거면 화장이라도 하든가. 네 여동생 좀 봐라. 쟤는 연애도 하고 그러는데 넌 도통 얼굴 꾸밀 생각을 안 하니까… 어쩌고저쩌고. 엄마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유는 핸드폰으로 SNS나 했다. 그게 더 엄마를 자극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런 잔소리들에 한도 끝도 없이 상처 받기에 유는 이미 지쳐 버렸으므로 별 수 없었다. 엄마는 유가 자신의 몇 마디 때문에 몸에 살이 붙는 일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쉽게 깨닫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여동생에게는 남자를 많이 만난다고 발랑 까졌다느니 위험하다느니 뭐라고 하면서도 유에게는 남자를 좀 만나라는 식의 어긋나는 말들을 실컷 늘어놓으면서도 뭐가 이상한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유는 엄마를 동정하면서도 동시에 귀찮아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모 네 집을 향해 가는 동안 차 안은 침묵만 맴돌았다. 대입이 코앞인 고등학교 3학년인 막내를 제외하고 유와 유의 여동생만 차 뒷좌석에 앉아 각자의 핸드폰을 보며 정적을 지켰다. 정적은 오래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호통과 함께 깨졌다. 가족들이 얼마 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 건데 고모 네 가서도 핸드폰이나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냐는 게 그 호통의 내용이었다. 자꾸 실망 시키지 마라,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유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 더 있다는 점이 새삼스러웠다. 유의 모든 성장 기록 속에서 아버지가 유에게 매긴 평점은 마이너스였다. 절대로 플러스가 될 수 없었다. 유는 아버지처럼 남자로 태어나지도 못 했고, 힘든 세대를 겪지도 않았으며 자신과 다르게 제가 이미 일구어 놓은 부유한 집안에서 탄탄대로로 자랐으니까. 유는 가끔 길을 다 가꿔놓고 이대로 걸으라고 강요하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 성취라는 걸 해 봐라, 하고 상반된 말을 늘어놓는 부모님에게 그럼 내 마음대로 하게 둬 봐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그 아우성에 돌아올 답을 유는 알고 있었다. 쟤가 배가 불러서 그래. 다른 애들은 너처럼 편하게 못 살아, 알아? 넌 부모 잘 만난 줄 알아. 어쩌고저쩌고.
유는 자신의 학벌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K대는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K대에 재학하는 다른 남학우들이 부끄러웠다. 그들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사람들이 K대에 가진 편견을 기꺼이 진실로 바꾸어 주는 재능. 20대임에도 부모를 닮아 강남권 보수 성향을 가진 놈들은 양반이었고 부모 돈 뜯어 먹으며 받았을 수많은 교육에도 인간이 되지 못해 단체 카톡방에서 여자애들 얼굴을 품평하거나 몸매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조금 괜찮다 싶은 놈들은 남자애들 무리 사이에서 낙오 돼서 군대에 가거나 휴학을 하다가 학교를 자퇴했다. 결국 멀쩡한 졸업장을 받고 사회로 나가는 K대생이란 그놈의 운동 문화인가 꿘 문화인가를 아직도 유서 깊은 '대학 문화'라고 믿고 있는, 학력밖에 자랑할 게 없는 찌질이들이었다. 유는 SNS를 통해 K대 남학생의 부끄러운 일화를 발견할 때면 그들을 대신해서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학교의 급을 떨어트리는 미꾸라지 같은 놈들을 두고도 학교는 고깝게 젊은 청년들의 미래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그들을 감싸고돌았다. 유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대부분의 명문대 졸업생들이 제 학교에 대한 애교심을 가지는 것과 달리 서류를 떼러 갈 때를 제외하고 다시는 학교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영문학과엔 남자가 없니? K대생 만나서 사귀면 얼마나 좋아. 유는 K대에 다니는 남자와 - 그것도 영문학을 전공하는 - 사귀느니 그냥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Y대 애들은 그래도 제정신인 척이라도 한다는데 제 학교의 남학생들은 불법 사이트를 드나드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저런 애들이 사회로 나가 고학력 기득권자가 되어 정재계를 떡 주무르듯 주무를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유는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든 자신이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무엇이라도 바꿔놓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서 그 빻은 소리만 하고 여자 몸만 밝히는 학점 2점대 후반의 찌질이들이 취업 문을 열고 사회 진출의 기회를 수여 받는 동안 유를 포함한 여학우들에게는 회사 문턱에 발을 들일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과탑을 하던 여자애 하나가 졸업 후 1년을 더 준비해 대기업에 입사한 것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학력이 아깝게 전부 7급 공무원 고시나 준비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걸 보고 명예퇴직을 준비하는 교수가 혀를 찼다. 요즘 교사니 공무원이니 하는 직종은 다 여자애들이 한다며? 큰일이야, 큰일. 유는 이제껏 대부분의 일터가 다 남자의 것이었는데 그중 몇 개가 여자의 것으로 돌아간다고 뭐가 큰일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정도로 큰일 날 세상이라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멸망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래서, 유는 아직 남자친구 없고?
제사상을 준비하던 고모가 유를 향해 물었다. 유는 상념에 빠져 있다가 그 말에 퍼뜩 고개를 들고 어설프게 웃기만 했다. 유가 올해로 몇 살이지? 하고 고모가 묻자 엄마가 유를 대신해서 유의 나이를 말했다. 너 금방 서른 된다, 하고 지레 겁을 주는 고모의 목소리에는 서른이 넘어 가면 여자애들은 어디에도 못 쓴다는 일종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유는 인상을 찡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패륜에 가까운 생각인지라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않았지만 유는 자신이 조금만 버티면 어차피 아버지로부터 어느 정도의 재산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 전까지는 얼마나 불합리하고 얼마나 좆같든 간에 버텨야 했다. 괜히 친척들과 부모의 기분을 상하게 해 봤자 아직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자신에게만 손해가 돌아올 테였다. 물론 그 ‘상속’이란 것마저도 맏딸인 유가 아니라 막내 남동생에게 더 과중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컸지만, 유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고민해 봐야 해결할 수도 없이 빡치기만 할 것이 분명했다. 고모 옆에서 제사 음식을 하나씩 주워 먹고 있던 고모부가 짐짓 근엄한 투로 K대까지 나와서 아직 일도 안 하고 말이야, 이래서 요즘 청년들이 고학력이면 안 되는 거다 어쩌고저쩌고 하며 타박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유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유가 대답도 하기 전에 말을 가로 채 그 걱정을 가장한 타박에 대신 대답을 뱉었다. 못해도 C기업이나 S기업 아니면 지금까지 들인 돈이 얼마인데 아깝지. 유는 자신이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무슨 펀드나 주식이 된 기분이었다. 간신히 방 안으로 도망쳐 유는 친척 어른들과 부모의 말을 한 귀로 흘려내기 위해 애를 썼다. 괜히 상기해 봐야 자기만 상처 받을 말들이었다. 그들은 전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겠지. 그들은 정말 이상했다. 길을 전부 정해두고 해내지 못하면 자신들이 이정도까지 해 줬는데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상처를 줬고 정해진 길을 따라 얌전하고 묵묵하게 성취를 해내면 요즘 젊은 애들은 스스로 자기 앞길을 개척할 줄 모른다고 면박을 줬다. 남자를 만나는 여동생한테는 발랑 까졌다고 하면서 만나지 않는 유에게는 이래서 많이 배운 여자애들은 안 된다고 혀를 찼다. 남자애들에게 수없이 기회를 줘 놓고 고시를 보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여자애들에게는 독하다고 혀를 찼다. 유는 이 부조리함 속에서 순종하는 척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상속의 날을 기다렸다. 두고 봐. 내가 제사 같은 거 지내나. 가족들 모일 기회를 내가 만들어 주나 봐. 내 아래 여자애들한테 상처 줄 기회를 내가 주나 보라고. 생각은 아직 생각으로 그쳤고, 문 밖에서 엄마가 유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얘, 와서 전 좀 부쳐라. 방에서 놀지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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