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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예르달리에서 약 3년간 사원으로 구르다가 최근에 대리로 승진한 킴은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점에서야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진짜 내가 내년에는 직장인 안 할 거다, 라는 말만 근속 3년째인 그의 입에서 절로 한숨 섞인 곡소리처럼 흘러나왔다. 갑자기 프로젝트 제출 전날에 발표자를 바꾸는 법이 어디 있나 싶었으나 일개 대리인 킴은 상사가 까라면 까는 수밖에 없는 미천한 직급의 회사원이었다. 아이 내가 진짜 이번에 연봉협상 안 해주면 회사 때려 칠 거라고 알겠냐? 알겠어? 하며 지하 주차장으로 최근 뽑아 할부금도 못 갚은 그의 애마를 찾아 내려왔을 때, 킴은 그만 너무 놀라 턱이 빠질 뻔 했다. 약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 인사팀에서 일하다가 경영 철학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다른 회사에 퀵-퍼펙트-이직에 성공했다는 가우라브 왓슨이 있었다. 킴은 잠시 자기도 모르게 회사 주차장을 잘못 찾아왔나 혼란에 빠졌지만 시야 근방에 자신의 할부금 24개월 남은 애마도 멀쩡하게 눈에 들어왔다. WHY? 차마 소속됐던 팀이 달라서 살갑게 와, 여기서 보네요! 라고 말을 걸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얼굴은 애매하게 아는 사이라서 대놓고 철판을 깔지도 못한 킴은 기둥 뒤에 사람 있어요 상태로 지하 주차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섰다. 아, 퇴근의 요정님. 저 집에 너무 너무 가고 싶어요.
<야근하는 회사원이 사내 스캔들을 발견한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킴은 회사 생활 3년 만에 학창 시절에는 약에 쓰려고 해도 생기지 않던 눈치를 얻었다.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직을 잘한 것인지 주식 투자라도 성공한 것인지 좋은 세단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가우라브를 훔쳐보던 킴은 곧 반대쪽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센서 등이 켜지며 나타나는 상대를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곧장 가우라브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우회전 한 번 없이 직진만 해서 걸어가는 사람은 바로 킴이 이 회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존경한다고 할 수 있는 이사 리아트였다. 이사님이 왜 거기서 나와? 킴은 자기가 혹시 놀람의 숨소리를 너무 크게 낼까 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가우라브가 자연스럽게 리아트를 차 조수석에 태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킴의 사고회로는 업무 및 추가 야근에 지친 뇌답지 않게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이거 혹시 우리 회사 사내 연애 금지니까 - 조항에는 없지만 다들 알음알음 사귀면 잘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가우라브가 퀵클리-퍼펙트-이직을 한 이유가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해서는 아닌가? 물론 가우라브는 정말로 경영 철학이 이 기업과 맞지 않아서 그만둔 거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킴은 자기 딴에는 대단히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킴의 추리가 자기 머릿속에서 셀프 구체화 작업을 끝냈을 때, 킴은 드디어 그렇게 고대하던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이야, 퇴근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고 늦게 퇴근하는 회사원이 사내 스캔들을 발견한다. 킴은 주말이 지나고 더 이상은 입이 간지러워 견딜 수 없었던 탓에 이사님을 제정신으로 마주하지 못할 것 같아 입사 동기들에게 점심을 먹으면서 자신이 지난 야근에 무엇을 보았는지 주절주절 털어 놓았다. 너희 다 그 인사팀 가우라브 왓슨 기억하지? 그렇게 말문이 트인 킴에게 스캔들이라면 또 하이에나들처럼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는 동료들이 그 키 크고 약간 덩치 좋으신? 하며 맞장구를 쳐왔다. 모두가 가우라브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킴이 주절주절 자신이 주차장 기둥 뒤에 숨어 무엇을 보았는지 떠들자 킴의 입사 동기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머, 어쩐지 이사님 애인 있으신 것 같더라,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 이사님 약간 에프엠 스타일이잖아. 무슨 날이어도 퇴근 시간 딱 지키시고 회장님 따님인데도 고지식하게 업무 처리 다 하시고. 동기의 말에 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경할 만한 분이지. 가끔 너무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말들을 하셔서 무섭긴 하지만. 이번에는 같이 점심을 먹던 동기들 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번에는 글쎄, 크리스마스였나 이브였나, 한 30분 일찍 나가시는 거 있지? 살짝 들어보니까 누가 회사 앞에 나와 있어서 좀 먼저 나가겠다고 하셨는데 나는 꼼짝없이 거래처 상무라도 왔나 싶었다니까. 그런 일 아니면 안 가시잖아, 원래. 킴은 동기의 말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이사님 애인이 가우라브 씨인 걸까? 식사를 거의 마친 동기들 사이의 분위기가 크게 술렁거렸다. 에이, 이사님이 아깝다. 한쪽에서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오자 입사 동기 중 인사팀에서 장기 근속한 인원이 급발진을 했다. 뭐? 가우라브 씨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데. 퇴사도 그쪽이 했잖아, 거기가 더 아깝지. 킴은 갑자기 누가 누가 더 아깝나 경기장이 되고 만 점심 식사 자리 한가운데에서 물컵에 남은 물만 홀짝 마셨다. 애들아, 나는 개인적으로 리아트 이사님이 더 아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절대 이사님을 존경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
<회사 소문은 천 리가 아니라 만 리도 갑니다>
회사 소문이란 무엇인가. 바로 발 없는 말과 같다. 혼자만 알고 있을 때는 몰라도 한 명이 다른 사람한테 딱 입을 여는 순간 예상치 못하게 천 리를 가게 되는 것이 소문이라는 것이다. 타 기업으로 이직했다고 알려져 있던 가우라브가 기업 내 회장 딸이자 실력파 이사 리아트의 남편 또는 적어도 애인일 것이라는 소문은 킴의 입에서 말이 나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내를 폭풍처럼 휩쓸었다. 어쩐지 월급 잘 주고 나름 대기업 선에 발 걸치고 있는 회사를 너무 쉽게 때려친다 했어. 나라도 애인이 이사님이면 회사 그만 두고 연애 한다. 어쩌고저쩌고 기타 등등. 천 리를 달린 발 없는 말은 소문 당사자인 리아트 귀에도 허겁지겁 들려왔다. 일부러 가우라브와 같이 저녁 식사도 좀 하고 드라이브도 할 생각으로 평소 퇴근 시간보다 늦게 그를 불러냈는데 오히려 그 부분에서 꼬리를 잡혔다는 게 리아트로서도 약간은 당황스러웠으나, 이 회사에서 강단 있고 실력파에 회장 딸이기까지 한 리아트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리아트는 사무실 책상 위에 팔을 올려놓고 턱을 괸 채로 생각했다. 그래도 이 이야기가 가우라브 귀에는 안 들어가는 쪽이 좋겠지.
하지만 언제나 인생사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 가우라브는 퇴직 후 1년 만에 처음으로 직장 동료였던 인사팀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가우라브 씨, 사실 이사님 애인이라면서요? 킴의 입사 동기이자 입이 저렴한 것으로는 바겐세일하면 무료 분양이나 다름없는 인사팀 그녀는 결국 사내에 발 없는 말을 풀어 놓은 것도 모자라 소문 당사자에게까지 갑작스러운 연락을 하는 기행을 벌이고 있었다. 인사팀 특유의 오지랖으로 왜 말씀 안 하셨어요, 호호! 하고 귀여운 축하 이모티콘까지 보내는데 가우라브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딱히 일부러 리아트와의 관계를 극비에 부친 것은 아니었지만 사내 연애가 암암리에 금지된 회사 풍조에 리아트가 괜한 불이익을 받을까 - 누가 불이익을 주겠냐만은 -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리아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하던 가우라브는 온통 정신이 소문 쪽에 팔려있던 탓에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칼질 실수까지 하며 손끝을 살짝 베였다. 문제가 있다면 리아트가 그 시점에 운명의 장난처럼 딱 귀가했다는 사실이었다. 리아트는 누가 봐도 '걱정이 있소' 같은 표정으로 한손에는 식칼을, 다른 손에는 피를 흘리고 있는 전업 주부 남편을 정면 목도하고 말았다. 벌써 전해 들었나? 리아트는 코트를 벗고 부엌으로 가 피가 나는 가우라브의 손을 감싸 잡았다. 소문 참 빠르지. 가우라브의 불안해 보이는 얼굴을 살피던 리아트는 손에 남은 상처 위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당신은 걱정할 것 없어. 그제야 제가 어떤 꼴일지 대충 짐작한 가우라브가 당신에게 한심한 꼴을 보였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리아트는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부엌의 분위기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의 저녁으로 가라앉았고, 무슨 문제가 생기든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리아트의 말에 한참 멀리 떨어진 도로 위에서 퇴근 중이던 킴은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져 헛된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라? 나 기가 허해졌나? 비타민제 새로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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