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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쿨 재학 시절 크리스티나는 주님에게 제발 대학에만 합격하게 해 주세요! 하고 오늘도 정의로운 의적이 되게 해 달라는 천X소녀 네X마냥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주님이 그런 크리스티나를 갸륵하게 여겨 영국 굴지의 명문 예술 대학에 그녀를 합격시켜 준 뒤로부터 어연 2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조소과를 비롯한 여러 예술계 병과가 한군데 모여 야간작업을 하고 있는 대학교 작업실 안에서 속으로 이렇게 빌고 있었다. , 대학 왜 안 망하지? 제발 교수님이 목숨에 지장이 안 생기는 수준에서 휴강을 자체적으로 때리실 만큼의 사고에 휘말리셨으면 좋겠다.

 

<언니 정말 그게 아니구요>

 

크리스티나가 2년 동안 재학 중인 예술 대학은 영국에서도 돈 좀 있고 가문도 되는, 속칭 엘리트들이 많이 다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 학기 등록금이 내 장기 값보다 비싸다! 등록금은 크리스티나가 자퇴서를 항상 가슴 깊이 진정한 예술가는 명문 예술 대학을 자퇴하면서 시작하는 거랬다. - 품고 다니면서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대학 과제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텨 온 가장 큰 이유였다. 예술계라는 것이 또 사회로 나가서는 다 인맥 빨로 좌지우지 되는 곳이 아니던가? 크리스티나는 악착같이 자기가 제출하는 작품마다 혹평을 아끼지 않는 조소과 교수들에게 알랑방귀를 뀌며 어떻게든 라인을 타 보려고 20대 초반답지 않게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와 같은 작업실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아티스트로 전면 활동해 유명한 사람들부터 취미로 예술 하는 집안 좋은 사람들까지, 좀비 같은 표정으로 붓과 조각칼을 들고 앉아 있기는 하지만 인맥으로 치자면 10점 만점에 10점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크리스티나의 꿈과 희망 다프네 시벗이 같은 작업실을 썼다.

크리스티나의 꿈과 희망 다프네 시벗이란 누구인가? 크리스티나는 입학 후 처음으로 다프네의 용안과 크리스티나는 다프네의 미모를 그냥 얼굴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했다. - 마주쳤을 때 눈이 멀어버리는 줄 알았다. 왜 역사 속 왕들이 미인한테 국고를 탕진하고 나라를 스프에다 빵 찢어 먹는 것처럼 말아먹는지 이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프네를 보고서 바로 아, 그럴 수 있지, 그럼 그럼 하고 이해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프네는 미모도 죽여주는데 집안도 끝내줬다. 재벌가 외동딸이니 다른 부잣집 자제들처럼 별 노력 없이 예술을 취미로만 해도 좋을 텐데 실력은 또 프로 화가급이라 크리스티나가 전시회 보조 스텝이나 하고 있을 때 다프네는 본인 전시회를 직접 열었다. 세간에서는 집안을 등에 업고 잘 나가는 것이라며 사실 얼굴만 예쁘고 실력은 너무 뻥튀기 된 거라고 돌려 까는 다프네 안티 세력도 존재했지만 크리스티나는 다프네의 전시회에서 제대로 다프네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다프네의 용안을 처음 봤을 때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크리스티나는 조소과였기 때문에 순수 회화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게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담아서 창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본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티나가 한 번 죽었다 깨어나도 다프네가 평범한 걸로 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크리스티나와 가까워지는 일은 없을 테였지만 크리스티나는 남몰래 다프네를 마음속 자신만의 ...같은 것으로 여기며 알게 모르게 존잘님 쫓아다니는 익명의 구독자처럼 다프네의 주변을 맴돌았다. 교수님이 하라는 대학 과제는 미뤄두고 남의 작업 시간 맞춰 다프네의 주변을 돌고 있었으니 크리스티나가 루소의 존재를 신경 쓰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루소 베르몬트란 또 누구인가? 크리스티나는 처음에 루소가 조소과나 회화과 학생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프네가 작업하는 예술대학 작업실이나 휴게실에 매번 얼굴을 비췄기 때문이었다. 꼭 다프네를 보기 위해 온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거의 상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예술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첫 몇 달은 크리스티나와 마찬가지로 저 선배 우리 과가 아니었어? 하고 꼭 충격을 받고는 했다. 크리스티나도 루소가 사실 그림이 아니라 작곡 전공이라는 것을 1년 전에나 깨닫지 않았던가. 루소 역시 다프네와 마찬가지로 부잣집 아들인 데다가 다프네와 항상 세트로 붙어 다니다 보니 학교 내에서 꽤 유명 인사였다. 그리고 전지적 크리스티나의 입장에서 루소는 다프네만큼은 아니었지만 미남이었다. 다프네의 성격을 슥 밀어서 잠금 해제 해 두고 얼굴과 집안만 따지면서 작업이라도 걸어 보려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프네 옆의 저 다프네한테 맹목적인 편이에요라고 얼굴에 적혀 있는 미모 되고 집안 되는 루소를 확인하고 백 스탭을 밟으며 돌아서기 일쑤였다. 예술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1의 시점으로 봤을 때 루소와 다프네는 누가 봐도 연인 같았다. 크리스티나도 처음에는 루소를 보고 다프네의 애인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게 그냥 친구면 난 친구 같은 거 없어. 크리스티나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조소과 동기인 존이 뒤에서 진실을 속삭여 주었다. 두 사람아직 안 사귀어. 사귀냐고 물어보니까 완전 해탈한 표정 짓던데? 그리고 너 친구 없다, 크리스티나.

 

왜 안 사귀어?

크리스티나의 모든 재앙은 이 다섯 글자에서 시작 되었다. 크리스티나는 다프네를 마음 깊이 꺄악 언니 너무 좋아해요 언니 너무 존잘이에요 와 같은 태도로 사모하고 있었지만 자기 주제 파악만큼은 정확했기 때문에 기왕 다프네가 누구와 썸을 타거나 연애를 한다면 그 상대가 자기가 아니라 루소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또 얼굴을 자주 보면 정이 드는 법이라고 한 시선 프레임 속에서 루소와 다프네의 전지적 크리스티나 시점으로 알콩달콩한 한 때를 지나치게 자주 관전하다 보니 크리스티나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자신이 장모고 루소는 참한 사위나 다름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크리스티나는 학교 커뮤니티 내 비밀 게시판에 교수님이 하라는 과제는 안 하고 루소와 크리스티나를 엮어서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퍼먹는 수준의 창작 망상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니 정말 그게 아니구요. 그냥 저는 남의 사랑이 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제가 조소과 출신이라서 조각 글을 잘 쓰거든요>

 

인간은 과제가 몰아닥치고 시험이 코앞이면 벽만 보고도 창작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망상글을 가장 기깔나게 적을 수 있는 시기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는 시기다. 크리스티나도 그랬다.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이 산을 이뤄 작업실에서 밤새 조각칼을 휘둘러도 모자랄 판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의미심장하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나 타닥타닥 두드려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티나에게 무반응이었다면 그녀가 적은 루소와 다프네 연애 망상글은 한 편으로 끝났을 테였지만 사람들은 크리스티나의 정형적인 조각 작품보다 색다른 사이버 RPS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예술계 인사들이란 또 관종의 DNA가 유전 레벨부터 존재하는지라 크리스티나는 멈추지 못하고 시리즈 썰 집필은 물론이요 음지의 다프네루소 지지자들과 교류를 이어나가며 썰북까지 소규모로 통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같은 공간에서 두 사람이 매일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소재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구원서사 내일은 나락서사 반반 섞어 허겁지겁 먹다 보니 크리스티나는 그 소규모 썰북이 다프네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는 사실조차도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너냐? 크리스티나는 자신 앞에서 제가 온갖 망살글 수위글도 조금 섞여 있었다. - 과 주접을 적어 놓은 썰북을 흔들며 네가 작가냐고 묻는 다프네의 아름다운 빡친 얼굴을 보며 혼절하고 싶었다. 아니 저거 누가 넘긴 거야 정말 미친 거 아니야 하고 속으로 온갖 쌍욕을 3초 컷으로 지껄이던 크리스티나는 노발대발 상태인 다프네에게 깨진 대리석 조각상처럼 아작나기 전에 납작 엎드리며 언니 그게 아니구요하고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크리스티나는 차마 입 밖으로 그렇지만 당신들이 사귀지 않는 게 더 나쁘니까! 하고 본심을 외칠 수가 없어서 헛소리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조각이 전공이라 조각 글도 잘 쓰거든요……. 크리스티나의 동기인 존이 썰북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루소의 뒤에 서서 크리스티나에게 그만 지껄이라며 두 팔로 커다란 엑스자 표시를 만들고 있었지만 이미 크리스티나는 너무 늦은 뒤였다. 드물게 비가 내리지 않는 영국의 하루는 정말 예술 대학을 자퇴하기 최고의 날씨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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