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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메네스 궁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전에 없는 활기를 띄었다. 인질로 잡혀갔던 2황자가 목숨이 경각에 달려보니 사랑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몰라도 정식 황자비를 들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처음 그 말을 듣고는 오빠인 황자의 저의를 가늠하는 듯 말이 없었으나, 반대 없이 축하의 말을 건네며 황자의 정실이 될 자를 궁으로 들여오라는 칙서를 내렸다. 평생을 미혼으로 살 것만 같았던 2황자 아자르 세르메네스의 결혼 소식에 그의 시녀들과 하인들은 목이 아까운 줄 알면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마디 씩 얹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래서 대체 아자르님은 누구랑 결혼하시는 거래? 황자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말단 하녀 파라가 그렇게 묻자 아자르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황자궁을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돌봐 온 팜피나가 이렇게 대답했다: 있어, 웬 불여시 같은 사내자식. 아주 불경한 태도였으나, 파라는 차마 눈에서 불꽃 광선이라도 쏠 것 같은 팜피나에게 그거 황실 모욕죄 아니야? 라고 묻지 못하고 응? 으응…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불여시 같은 사내자식>
아자르는 황자로서도 장군으로서도 누구에게나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타고나기를 호의를 쉽게 사는 체질이라고나 할까. 본인은 썩 자신의 인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편이었으나 신분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곧잘 그를 좋아했다. 아자르는 황제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도 아니었고 어디의 거상처럼 말을 나눌 때 단어 하나조차 주의해서 뱉어야 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나 타고난 핏줄이 고귀하고 품성 역시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자가 얼마 없으니 겉보기에는 흠 잡을 데가 없어 궁내의 젊은 처녀들과 청년들 사이에서는 남몰래 아자르를 연모하는 이들이 많았다. 팜피나는 아자르에 대한 존경과 경애가 그를 따르는 군인들 못지않게 열정적인 편에 속하는 시녀 아이였는데, 황제궁의 시녀로 들어왔다가 외국인 왕자가 황제의 침소에 들어서게 되면서 황자궁으로 좌천된 케이스였다. 황제궁과 황자궁의 월급 자체가 다름에도 팜피나는 황자궁 시녀가 됐을 때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드디어 조금 마음 편한 직장 생활이 되겠구나!
표현만 시녀 아이라고 할뿐 이미 성인이 넘은 연령인 데다가, 일하는 어린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나이도 꽤 많아 대장 노릇을 자주 하는 팜피나는 아자르에게 결혼할 상대가 생겼다는 말에 처음에는 크게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황자비가 될 사람이 누군지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황자님도 벌써 그럴 나이가 됐지, 하고 흐뭇해하던 팜피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입궁하는 사람의 이름을 보고 낯빛이 파리해졌다. 롯 파사? 전쟁터에서 아자르와 롯이 얼마나 끈적하게 엮였는지 제 두 눈으로 보지 못한 팜피나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황자비의 모습과 일억 광년 정도 먼 위치에 있는 롯의 이름을 셀 수 없이 다시 확인했다. 제가 아는 ‘그’ 롯 파사 말인가요? 하고 시녀장에게까지 확인을 받은 뒤에야 팜피나는 땅을 치며 우리 황자님을 그런 불여시에게…… 하고 이를 갈았다. 나는 이 결혼 반댈세! 하고 팜피나가 아무리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드러누워 봐야 이미 황제의 승인이 난 결혼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무를 수가 없었다. 바닥에 드러누운 사람은 팜피나뿐만이 아니었다. 황자가 좀 더 지체 있고 품격 있는 고귀한 자와 결혼할 줄 알았던 황궁 사용인들은 부유한 평민에 지나지 않은 롯 파사가 황자비 자리를 꿰찬 것을 못마땅해 했다. 게다가 롯이 그냥 평민이던가? 제 누이와 상피 붙다가 집안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전쟁터로 내보내졌다는 것을 알음알음 모르는 사람이 없는 천박한 자였다. 생긴 것이야 금을 닮아 반짝 거리고 아름답게 생겼음을 부정할 수 없으나 남의 손가락을 자르며 헤죽 웃는 롯 파사의 인품은 얼굴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바닥이었다. 폭군에게나 어울리는 요부가 우리 황자님을 홀렸다며 여기저기서 천박한 예비 황자비에 대한 불만이 튀어 나오고 괜한 구설수가 돌았다. 팜피나는 같은 불만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가루가 될 때까지 롯에 대한 호박씨를 깠다. 무슨 주술을 걸어서 우리 아자르님을 홀린 게 분명하다니까요. 이 결혼은 황가에 대한 모욕입니다, 모욕! 목에 핏대가 서도록 주장하는 팜피나의 태도에 높으신 분들의 일이니 관여하지 않으려던 하인들 몇이 얼떨결에 선동 당했다. 롯의 입궁일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팜피나는 이미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무를 수 없게 된 아자르와 롯의 결혼에 마지막 반대표를 던지기 위해 뜻을 같이한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노골적이고 추찹한 이미지를 만들어 황자님께서 그 불여시를 경멸하게 만들죠. 우리 함께 외설을 씁시다!
<세르메네스 황가의 반려 취향은 알다가도 모를 일>
팜피나의 절대적 패배 요인은 하나, 아자르 세르메네스가 얼마나 롯 파사를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고 둘, 롯 파사의 악독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위를 휘감은 온갖 소문들은 8할 정도는 전부 사실이었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롯은 입궁하기 전부터 황자궁 사용인들 사이에 암암리에 돈다는 아자르와 자신에 대한 외설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필사본을 받아 몇 장에 달하는 외설을 정독한 롯은 코웃음을 치며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린 손으로 까끌한 양피지를 구겨 버렸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추잡하다 여기는 자들이 제게 개기는 것이 아주 앙큼하고 귀여운 동시에 이를 세운 쥐를 물어 죽이고 싶은 고양이처럼 살짝 신경질이 나는 수준이었다. 이게 야해? 절반 정도는 우습기도 했다. 황제가 승인한 결혼에 제깟 것들이 뭐라고 이렇게 달려드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롯은 입궁을 하고 황자비궁을 차지하자마자 황제를 알현하기 전에 시녀들을 다 한데 불러 모았다. 결혼식은 아직 치르기 전이었으나 아자르는 롯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라고 했고 롯은 그 권력적 호의를 거절할 만큼 청렴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황자궁의 시녀들을 다 전부 제 소관으로 주세요. 롯 파사의 이런 요구는 사실 따지자면 애교 수준이었으므로, 아자르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하고는 사람들을 너무 괴롭히지는 말라고 엄하게 덧붙였다. 물론 아자르의 이런 염려나 걱정은 롯에게 일절 알 바가 아니었다. 이미 롯은 세르메네스의 황자 아자르에게 자기 앞에 무릎 꿇으라고 시킨 적 있는 자였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롯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남을 굴복시키는 것을 좋아했다. 아자르는 구태여 시녀들을 달라는 롯의 요구에 염려를 표하기는 했으나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팜피나와 파라를 포함한 여러 시녀들이 하루아침에 사유도 알지 못한 채로 황자비궁을 향해 짐을 싸들고 와야만 했다. 팜피나는 이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그 포악하고 욕심 많은 놈이 기어코 아자르님의 것을 탐하는구나, 하고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황제를 알현하고 돌아오자마자 롯은 황자궁에서 이전해 온 몇 십 명의 시녀들을 황자비궁 바깥에 일렬로 세워두었다. 시녀들 사이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황제도 아니고 고작 얼마 뒤에 황자비가 될 평민 출신의 사내가 저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영 못마땅한지 표정이 좋지 않았으나 롯은 타인의 감정을 그렇게 섬세하게 신경 쓰는 편도 아니었다. 고개를 조아리고 선 시녀들의 얼굴을 무슨 보석 정밀 감정하듯이 세세하게 뜯어보던 롯이 문득 팜피나의 앞에서 그 걸음을 멈췄다. 롯의 미소 지은 얼굴은 은밀한 맛이 있어 아름다웠으나 동시에 어딘지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굴어도 영 사람을 껄끄럽게 만드는 재주가 그가 가진 재능들 중 하나였다. 웃는 낯 그대로 팜피나의 오른 손목을 잡아 챈 롯이 제 가까이로 그 손을 들어 올렸다. 어디 보자, 결혼 선물로는…… 네 약지가 좋겠구나. 진담인지 농담인지 영 짐작하기 어려운 말에 팜피나를 포함한 시녀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팜피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하고 간신히 롯에게 질문을 던졌다. 롯은 눈썹 한쪽을 위로 치켜들며 싫어? 하고 다시 웃었다. 나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펜촉을 놀리기에 선물을 주고 싶은 줄 알았지. 팜피나와 함께 격을 실추 시켜 아예 궁에서 쫓아 버리자며 롯에 관한 추문과 외설을 적어 퍼트렸던 다른 시녀들의 낯빛은 이제 아예 까맣게 죽어버린 것과 같은 지경이었다. 롯은 팜피나의 오른 손목을 바닥으로 던지듯 탁 놓아주고는 그 화려한 차림새 그대로 발발 떠는 시녀들을 지나 우아하게 걸었다. 왜들 이리 겁을 먹었나? 농담이야, 농담. 설마 내가 황궁에서 그러려고. 다만 내가 선물을 받기는 받아야겠으니, 내게 손목 잡힌 너. 너는 날 좀 따라 들어 오거라. 팜피나가 머뭇거리자 시녀장이 억지로 팜피나의 등을 밀었다. 롯은 안채의 문을 반쯤 열어두고 말을 덧붙였다. 와서 그 낭랑하고 앙큼한 목소리로 네가 쓴 그 외설들 좀 들어 보자. 마침 황자님도 내가 초대해 두었단다. 네가 생각해도 내가 참, 불여시 같지? 아자르가 안채 안쪽에 앉아 있다가 열린 문틈 사이로 웃는 롯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팜피나의 시야에도 들어왔다. 팜피나는 두 걸음 정도를 더 옮기다가 그만 수치심과 분노를 못 이겨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가 기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롯의 빙그레썅놈처럼 웃는 얼굴이었다.
팜피나가 생각하기에, 세르메네스의 황족들은 황제부터 황자까지 반려를 고르는 안목이 정말 개미핥기의 눈물만큼도 없는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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