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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대하던 대학에 당당히 신입생으로 입학한 모니카 양은 법과대학 교수님들 옆에서 무슨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기사님처럼 딱 뒷짐 지고 서 있던 학군단 소속 카히르 엘로웬 폰토스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부터 현실에 없는 남자 사랑하기가 취미였던 그녀는 너도 나이가 찼으니 연애를 해야 하지 않겠니? 하는 구닥다리 발언을 하는 엄마에게 엄마 사위 한 번 골라 봐, 하고 흑발 푸른 눈의 북부 대공과 금발 적안의 싸이코지만 나에게는 따뜻하겠지 황제 타입 그림을 보내 두고 엄마, 나는 현실에 없는 판타지남들만 좋아해, 하고 못을 박아 엄마의 오랜 고질병 저혈압을 일찍이 치료해뒀던 터였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 모니카 양은 카히르의 흉터 있는 얼굴부터 흑발에 붉은 눈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자신이 그리던 이상적인 판타지 남주 상이라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칠 뻔 했다. 엄마, 나 대학 가길 잘 한 거 같아!
<아픈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우리만의 국룰이라고 했잖아>
모니카 양은 오랜 시간 비현실계 남자를 좋아해 온 대가로 이른 나이에 오타쿠계의 이치를 깨달은 지 오래였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한눈에 반하면 해탈한 현자가 된다고, 모니카 양은 한눈에 반한 카히르라고 할지라도 그와 무슨 알콩달콩 연애 시뮬레이션을 해 볼 생각은 일절 없었다. 자신의 주제를 알고 거리를 지켜야 훌륭한 덕질을 오래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동안 깨달은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대학 재학 시기 동안 학군단 주변을 배회하던 모니카는 카히르의 짜릿한 얼굴 감상이나 하며 학창시절을 흥청망청 낭비할 계획이었다. 너무 자주 카히르의 얼굴을 구경 다니다 보니 곧 모니카는 카히르 주변의 기이한 인간관계 하나를 알아채고 말았다. 카히르의 전공이 분명 법대가 아니었을 테니 법과대학 교수인 파테르 블로얀웨르드와 그렇게 가까이 지낼 이유가 분명히 없을 텐데 – 모니카 양은 학군단도 아닌 자신이 카히르 주변을 돌고 있는 부분의 이상함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 두 사람은 곧잘 모니카의 시선 프레임에 한 번에 잡히곤 했다. 저 둘 무슨 사이지? 무거운 대학 전공 서적을 파테르를 대신해 한 손 가득 들어주며 가는 카히르의 뒷모습을 보면서 모니카는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비주얼이 되는 사람이 둘 이상 붙어 있기만 해도 연애적 망상 나래를 펼치는 것이 모니카 양의 기본 스탠스였으므로 바로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니카 양과 같은 과 동기인 체자레가 그런 그녀의 상태를 바로 눈치채고 모니카의 등짝을 철썩 내려치며 너 애먼 상상하지 마라? 하고 으름장을 놨다. 저 교수님 안색을 봐. 누가 봐도 아픈 사람이잖아! 우리가 아무리 오타쿠라도 상도덕이 있지, 아픈 사람은 안 건드리는 게 우리 사이의 국룰인 거 몰라?
모니카가 백 번을 생각해 봐도 체자레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 모니카는 학식과 예의, 패기는 갖췄을지언정 망상하지 않는 법만큼은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저런 병약함이 더 맛있는 걸? 혀를 쯧쯧 차며 너 그러다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한다? 상대는 법대 교수다? 하고 맞는 충고를 하는 체자레를 뒤로 하고 모니카는 대학 입시 후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원래 나라님도 없는 자리에서는 다른 정치인이랑 엮어 먹는 세상인 것을 교수님이랑 학군단 하나 좀 엮어 먹는다고 내가 정치범 되는 건 아니잖아? 라는 믿음으로 모니카는 한눈에 반한 카히르에게 말 한마디 붙여 보는 대신 카히르와 파테르를 소재로 대리만족형 팬픽을 쓰기로 결정했다. 나, 모니카. 혁명적인 대학생이지. 원래 국룰은 바꾸라고 있는 거니까.
<법대 교수가 RPS를 마주하면>
파테르의 손에 모니카의 팬픽이 떨어진 것은 새로운 학기가 다시 시작할 무렵이었다. 파테르는 몸이 좋지 않은 탓에 본인 교수 연구실 밖으로 외출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그녀를 학구적으로 존경하는 제자들을 산하에 여럿 두고 있는 편이었다. 매일 논문이며 법 판례며 텍스트 중독자들처럼 글을 읽어대던 파테르의 제자들에게 모니카가 적은 파테르와 카히르 팬픽이 몇 편 들어온 것은 순전히 – 파테르 이름으로 구*에 논문 검색하다가 찾았다. - 우연이었다. 선배님, 이거 고소할까요? 저희 교수님의 명예가…… 하고 말을 흐리는 후배를 앞에 두고 법대 석사 코스를 타 버린 파테르의 제자1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실존하는 인물의 동의를 받지 않고 멋대로 2차 창작을 해 쟤랑 얘랑 사귄대, 하는 것은 명실상부한 위법이 맞았지만 팬픽 내용 어디에도 파테르의 명예가 상하는 부분은 귀신같이 없었던 탓이었다. 이거 아주 영악한 걸? 고백도 카히르가 하고 차이는 것도 카히르가 하고 쫓아가는 것도 카히르가 하잖아. 게다가 카히르는… 잘생겼잖아? 결국 두런두런 모여 앉아 다 함께 모니카의 팬픽을 돌려 본 법대 학부 및 대학원생들은 판결을 내리듯 책상을 세 번 탕탕탕 내리친 다음 선언했다. 판례를 모르겠으니 그냥 교수님한테 알려 드리자.
이런 루트로 모니카의 팬픽을 접하게 된 파테르는 안경을 끼고 읽었음에도 뻑뻑해진 눈가를 손으로 감싸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학생들이 보기에도 카히르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파테르의 입장에서는 조금 곤란했다. 파테르 역시 누가 물어본다면 도저히 젊고 잘생긴, 그리고 자신에게 한없이 헌신적인 카히르에게 일말의 관심이나 호감도 가지고 있지 않노라고 말할 자신은 없었지만 세상에는 ‘그래선 안 되는 일들’이 항상 있었다. 첫째로 카히르는 파테르의 제자였다. 법대생은 아니었지만 학군단 소속이라고 해도 엄연히 몇 번 교양 수업을 들으러 왔던 카히르에게 파테르가 직접 중간 기말 성적 평가까지 하지 않았던가. 졸업도 전에 카히르랑 좋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면 학생들로부터 정당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게다가 나이 차는 또 어떻고. 요즘 신입생들의 연애 전선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하는 파테르가 봐도 카히르는 누구에게나 꽤 인기가 있었다. 조금 과묵하고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주변으로부터 듣는 점을 제외하면 그 흔한 뜬소문 하나 없는 바른 청년이지 않은가. 그런 젊은 남자애가 병약하고 나이 많은 자신에게 호의를 보내는 것을, 그리고 그 애정이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를 파테르는 늘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석사생으로부터 팬픽을 쓴 사람을 찾아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까요? 라는 말이 나왔지만 파테르는 고개를 저었다. 괜히 유난을 떨어봐야 소문만 안 좋게 날 것이 분명했다.
카히르는 파테르보다 조금 늦게 팬픽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쯤 돼서는 모니카도 위기감을 느꼈던 터라 자신이 썼던 글들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후다닥 내리고 있었던 시점이었으므로 카히르가 본 팬픽의 분량은 파테르가 읽은 것보다 한참 적은 수준이었다. 자신이 파테르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 장면을 꽤 덤덤한 마음가짐으로 읽은 카히르는 변함없는 태도로 파테르를 대했다. 어차피 카히르는 제 애정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 둘 주변을 여전히 파파라치처럼 빙빙 돌면서 혹시 나 들켰나? 상태로 지켜보던 모니카 양은 크게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의 태도와 법원으로부터 날라오지 않는 고소장에 점차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대학교 내의 생활은 누구에게든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게 흘러갔다. 꼭 모니카의 팬픽 때문이 아니더라도 파테르와 카히르의 관계는 알게 모르게 점점 끝자락에 불이 붙은 도화선처럼 조용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조용해서 본인들도 서로의 불씨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기말고사가 한창인 학기 말 시점에, 강의실 복도를 걷던 모니카 역시 소리소문없는 화재에 휘말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공 서적을 대신 들어 준 카히르를 대동하고 창백한 얼굴로 교수 연구실로 향하던 파테르는 어느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던 모니카를 불러 멈춰 세웠다. 자네는… 연구실에서 한 번 보지. 파테르의 이 말 한마디에 모니카는 심장이 내려앉다 못해 수직 하강하여 발 끝에 처박혔다. 원래 고소는 시작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체자레의 말이 모니카의 머릿속을 주문처럼 윙윙 맴돌았다. 엄마, 나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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