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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H. 깃펜을 손에 쥐고 한참동안 다음 문장을 이어나가지 못하던 P는 곧 간단한 인사말로 서두를 시작했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한 이 비밀의 펜팔 친구 만들기는 잠깐 저학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졌다가 대부분의 유행이 그렇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 들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처럼 편지에 장난질을 치거나 단답으로 응수하는 펜팔 상대가 아닌 정말로 '친애하는'이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익명의 편지 친구를 만난 P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런 유행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가는 시점까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대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익명의 펜팔 친구 H에 대해 P가 아는 것이라고는 글씨체와 편지 안에 적힌 하루 전반에 대한 두루뭉술한 이야기, 그리고 자잘한 호불호에 관련된 것들뿐이었지만 P는 학교 내 다른 누구보다도 제 펜팔 상대에게 깊은 애착을 느꼈다. 만약 실제로 만난다면 우린 분명 괜찮은 사이가 되겠지? 나이가 들어서 서로에게 짝이 필요해진다면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도 있을 거야. P가 몇 년 전 수많은 펜팔들 사이에 장난 식으로 약혼 서약서 따위를 끼워 넣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그 익명의 편지 상대가 H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네 존재를 알게 된 날 생각했어 우리 사이의 오블리비아테>
P는 H가 싫었다. 부유한 집안의 고상한 아가씨인 그녀는 래번클로다운 이지적인 면모와 교양을 두루 갖춘 학생이었지만 H는 대단한 이유 없이 그냥 싫어했다. 사랑에 이유가 없다면 증오나 미움에도 이유가 없는 것이 공평한 법 아니던가? 평소 덤덤하다 못 해 차갑기까지 한 P가 H를 보면 인상을 구기는 것을 보고 같은 래번클로 학생 한 명이 학구적인 얼굴로 너는 왜 쟤가 싫어? 어떤 감정적 이유 때문이니? 하고 물은 적도 있었다. P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렇게 대꾸했다. 저번에 퀴디치 한 번 우리 기숙사한테 이겼다고 세레머니하는 게 재수 없었어.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H 입장에서는 P가 자신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P와 H의 가문은 무슨 결탁을 한 사이는 아니어도 꽤 교류가 있는 편이었고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다. 그 가문에 속한 두 자녀들이 서로 이를 드러내고 싸워 봐야 이득 볼 것이라곤 하나 없는데 P가 왜 매번 저만 보면 싫은 얼굴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꽤 예쁘장한 편이었던 P의 얼굴을 보고 조금 설렜던 적 있었던 H는 내심 그녀에게 잘 해주고 싶었다. 물론 기숙사가 다르고 듣는 강의가 자주 겹치지 않으니 말을 걸 일이 드물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나름대로 마주칠 때마다 친절하게 대해 줄 생각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타인과 적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H 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나 H는 너 정말 예쁘구나, 라든가 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따위의 문장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하기에는 조금 감정적이었고 또 수줍음도 탈 줄 알았다. P와의 공식적인 첫 대면에서 H가 뚱한 표정을 지었던 것은 오로지 약간의 낯가림과 수줍음 때문이었다. 뭐야, 뭘 쳐다 봐? 하고 뒤돌아 간 것도 절대 그의 고의는 아니었다. 둘 사이의 불화는 셈을 정확히 해 따지자면 쌍방과실이 맞았다. 하지만 H는 내심 그래도 8할 정도는 P 탓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나 너 싫어'를 온 얼굴과 몸으로 표현하고 지나가는 P를 볼 때마다 H는 불타오르는 승부욕에 질 수 없지, 하고 P를 효율적으로 싫어할 수 있는 101가지 방법을 떠올리곤 했으니까. 따지자면 네 탓이야. 두 사람 사이의 골은 회복될 기미 없이 졸업 직전까지도 유구하게 깊어져만 갔다.
충격적인 사실은 어느 날 낙뢰처럼 둘에게 내리꽂혔다. 내심 익명의 펜팔 친구에게 각자의 욕을 한두 번 정도는 써 본 적 있었던 - 물론 누구 욕인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 두 사람은 호그와트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사실 서로가 서로의 펜팔 상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의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주고받은 편지와 양피지, 그리고 자잘한 서류 같은 것들이 책으로 묶어도 세 권은 나올 만큼 기록이 쌓이면 어느 순간 외면하려고 해도 알 수밖에 없는 지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H는 생각보다 제 몇 년 펜팔 상대가 P라는 사실을 무던하게 받아들였다. 어쩐지 서체가 고상하더니 과연 그랬군, 정도의 단순한 감상이 H가 느끼는 당혹감의 전부였다. 그러나 P는…… 오블리비아테를 스스로에게 쏜다면 과연 이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P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옆에 있던 학생이 화들짝 놀라 평소의 새침한 무드와 다르게 얼굴에 음영까지 진 P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다른 학생에게 손을 내저으며 P가 대답했다. 별 일 아니야. 그냥 사람 하나를 묻는 게 빠를지 내가 나한테 오블리비아테를 쏘는 게 빠를지 학구적인 궁금증이 들었을 뿐이거든.
<계약서를 서신으로 주고받을 때는 신중히>
레널드는 들어온 청혼서를 받아들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결혼이야말로 세를 불리기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지 않던가. 그러나 레널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문과 가문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과 달리 P는 H를 좋아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그렇게 몇 년간 좋다고 노래 노래를 부르던 펜팔 상대가 H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깊이 받은 탓에 잠시 식음을 전폐했을 - 이성적으로 생각해 이틀 정도 지나자 다시 먹긴 먹었다. - 정도였다. 그렇다고 또 P가 H를 죽일 정도로 싫어하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레널드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알기로 제 여동생은 오빠인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에게든 나름대로 선이 확실한 사람인데, 펜팔이라는 특수 매개체가 있기는 했어도 H 를 완전히 끊어낼 생각은 못하는 눈치였다. 가문 문제야 어떻든 좋은 혼처라고 해도 P가 싫다, 하면 거절하는 게 맞는 일이긴 했지만 마침 한 번 P가 내다 버리려고 했던 펜팔 종이 뭉터기들 사이에서 장난으로 작성했던 영혼의 단짝 약혼 서약서까지 찾아낸 - 물론 P는 내다 버린다고 해 놓고 두 시간 만에 모든 펜팔 흔적들을 소중하게 다시 싸들고 돌아갔다. - 레널드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동생을 출가외인으로 만들어 홀랑 치워버릴 신이 주신 기회. 서로가 서로의 펜팔 친구임을 깨닫게 되고 나서는 P가 H를 슬슬 피해 다닌다고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원래 정략 결혼하는 부부들이란 으레 그런 법이다. 혼자서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고 모든 결론을 땅땅 머릿속으로 내버린 레널드는 어쩐지 조금 상쾌해진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막상 결혼하면 잘 살지 누가 알겠어?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할지도.
P는 미치고 팔짝 뛰기 직전이었다. 물론 상황이 아무리 최악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그녀는 팔짝 뛸 생각이 없었지만, 표현하자면 그랬다. H 역시 이 모든 상황이 어색하고 갑작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인 사실을 몰랐을 때 친애하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편지와 함께 약혼 서약서를 나눠가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게 이딴 식으로 나비효과가 되어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 줄은 둘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P는 현실을 과도하게 부정하고 있는 중인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때문에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H의 멱살을 잡아 쥐고 흔들었다. 안 되겠어. 멱살이 잡힌 채 아니 뭐가 안 돼, 하고 같이 울상을 지으며 흔들리던 H는 이어지는 P의 말에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랑 결혼할 거면 펜팔 다시 시작하든가 네 존재 자체를 지워.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 주장이라는 포지션이 무색하게 P의 가녀린 팔에 잡혀 이리저리 흔들리던 H는 머릿속에 차오르는 아찔함을 내쫓기 위해 자신을 흔드는 P의 손길에 맞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넌 그게 문제냐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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