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살의 앨리스 리하르트는 와이오밍 주를 향해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화물 트럭을 몰았다. 화기 엄금 주의가 붙은 화물 탱크에는 출렁이는 휘발유와 경유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밤길에 주와 주의 경계를 넘는 트럭을 모는 일은 나이 많은 베테랑 남자 운전수들도 꺼리는 일이었지만, 앨리스는 흔쾌히 화물 트럭 운전석에 올라 자신이 해내고 오겠다고 단언했다. 그 일은 꼭 그녀가 독립적인 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내라고 신이 주신 시험과도 같았다. 핸들을 잡고 엑셀을 밟으면서, 바람이 빠진 좌석 헤드에 머리를 기대며 앨리스는 차 앞쪽에 달아둔 십자가가 하염없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01. 크리스천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 리하르트는 독일계 미국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조부가 세계 대전 당시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인이기 때문에 손녀인 그녀에게도 독일계라는 카테고리가 붙었던 것이지만. 유대교였던 그녀의 조부모와 다르게 그녀의 부모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크리스천으로 개종했다. 그녀는 뱃속에서부터 성경 말씀을 들었고 백일기도를 받았다. 이름은 그녀의 독일인 조부가 지어주었다. 베텐베르크 공녀 앨리스에서 이름을 따와 앨리스라고 하자. 집안의 어른이 지어주는 아이의 이름을 그녀의 부모는 거절하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앨리스의 모친은 앨리스를 낳은 뒤로 다시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그것은 잉태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축복이었으나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기독교 가정 안에서는 불행이었다. 앨리스는 종교적인 사랑과 믿음 속에서 신실하고 얌전한 아이로 자랐지만 가족들이 제게 대업을 이루거나 가문을 번영 시키는 등의 거창한 일은 단 하나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족들이 앨리스에게 바라는 일은 오로지 하나였다. 번듯한 집안의 사내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보란 듯이 백인 중산층 프로테스탄트 미국인처럼 잘 살아가는 것.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 여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앨리스에게 대학에 가라고 말해 주었던 사람은 나이 많은 기숙사 사감 한 명뿐이었다. 너는 성적이 우수해. 요즘은 여자 아이들도 대학에 갈 수 있다. 십 대의 앨리스는 그 퉁명스럽고 학생들에게 인기라고는 하나 없는 기숙사 사감을 인간적으로 존경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어떤 과목이든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할 만큼의 머리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부모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앨리스의 모친은 사랑과 걱정을 담은 얼굴로 앨리스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네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오로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뿐이야.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 여자의 미덕이란다. 구시대의 구시대에는 그것이 정말로 ‘미덕’이었기 때문에, 앨리스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혼하는 게 싫지도 않았고 괜히 몇 안 되는 엘리트 여학생들 사이에 섞여 머리 좋은 여자애들은 이래서 안 돼,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인신공격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주일마다 나가는 교회 목사의 소개로 일라이 리하르트를 만난 것은 앨리스가 스무 살이 됐을 때였다. 일라이는 앨리스에게 신사적으로 굴었고 적당한 수입이 있었으며 신학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목사님이 말했다. 나중에 정식 목사가 되려면 일라이에게도 아내와 자녀가 있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걸 보여줘야 사람들은 좋은 평판을 주거든요. 일라이가 청혼했을 때 앨리스는 과연 일라이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결혼은 사회적 약속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고, 그와 그녀는 둘 다 이상적인 가정이 필요했다.
결혼식 준비는 어렵지 않게 진행 되었다. 검소함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개신교 신자들의 결합답게 앨리스가 새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케와 웨딩 드레스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모친의 것을 수선해서 물려 입으려던 것이 체격 차이 때문에 맞지 않아 사게 된 것이었다. 일라이는 앨리스에게 당신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하라고 말했지만 앨리스는 그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교회를 식장으로 잡았을 때도 일라이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팔목까지 가리고 끝이 길게 늘어지는 웨딩 드레스를 보고 예쁘군요, 라는 칭찬을 해준 것이 전부였다. 웨딩 마치는 간소하게 치러졌고 신혼 여행은 가지 않았다. 앨리스는 백합 부케를 들었지만, 들러리가 없었기 때문에 부케 역시 던지지 않았다. 주례는 길었고 맹세의 키스는 진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라이는 앨리스의 왼손 약지에 은으로 된 결혼반지를 끼워주곤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라이는 헌신적이고 상냥한, 이상적인 남편이었고 둘은 계획적인 임신을 통해 아들 루드비히를 낳았다. 대부분의 양육은 전업주부였던 앨리스가 맡았지만 그들의 아이는 정적이고 엄격한 부모를 빼다박아 지나치게 얌전했다. 앨리스의 모친은 제 손자가 혹시 자폐아는 아닐지 의심할 정도였다.
남편을 사랑했어?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앨리스는 단번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표현하는 두근거리는 감정과 속을 에는 듯한 애틋함이 부부 사이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입을 맞췄고, 잠자리를 가졌으며 아이를 낳아 함께 길렀다. 같은 식탁에서 식사했고 같은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일라이는 앨리스의 긴 금발 머리를 볼 때마다 조금 웃었다. 꼭 빛을 머금은 모래사장 같아요. 앨리스는 그 말이 부끄러웠고, 또 좋았다.
02. 그건 내 전부였어
일라이는 어떤 징조도 없이 사라졌다. 언젠가 앨리스의 모친은 사내들이란 아무리 개신교라고 한들 전부 바람이 나기 마련이라며 신실함이라면 어디서 뒤처지지 않는 일라이에 대해서도 매한가지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릴 것이라 저주인지 예언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 놨었지만 앨리스는 일라이가 이렇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돌아오겠지, 하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지 반년이 지나고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앨리스는 하루 아침에 애 딸린 과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앨리스를 동정했고 가족들은 앨리스를 부끄러워했다. 얼마나 목석처럼 굴었으면 남편이 다 도망을 가? 수군거리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정절과 순결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교회 사람들이었다. 앨리스의 모친은 순식간에 무너진 딸의 결혼 생활이 큰 결함이며 그것이 부끄러워 요즘은 교회에 얼굴 비추기도 힘들다는 하소연을 앨리스에게 늘어 놓았다. 집안의 가장이던 남편이 사라지자 아직 젊고 예뻤던 그녀를 어떻게 해 보려는 사내들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고, 중상류층에 가까웠던 소비와 생활은 점점 빈곤해졌다. 루드비히는 아직 네 살이었다. 어린 아들의 손은 평균 여성들보다 한뼘은 큰 앨리스의 손바닥 반절조차 되지 않는 크기였다. 일라이의 장례식에는 비가 내렸고 앨리스는 면사포 대신 검은 베일을 썼다. 어린 루드비히는 이미 제 아버지의 얼굴을 잊은 지 오래였다. 관 속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백합으로 가득 채워졌다. 주례를 섰던 목사가 장례를 치렀다. 앨리스는 저 멀리서 아직 남편이 살아서 자신의 장례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수만 번 의심했지만, 뼛조각 하나 남지 않은 발인식이 끝났을 때에도 돌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루드비히는 침통한 사람들 사이에서 본능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앨리스에게만 속닥이듯 물었다. 그러면 엄마, 이제 우리는 둘밖에 없어? 앨리스는 어린 루드비히의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움켜쥐고 대답했다. 그래, 이제 우리는 우리밖에 없어.
앨리스는 자애로운 어머니이기 전애 엄격한 양육자였다. 아이를 때리거나 고함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루드비히는 본능적으로 앨리스의 눈치를 봤다. 아이는 나이가 들수록 제 엄마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스스로의 삶을 희생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누구도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아름답던 긴 금발 머리가 짧게 잘린 순간부터 루드비히는 앨리스를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은 엄마가 지쳐버리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으로부터 파생된 것이었다. 앨리스는 루드비히를 사랑했지만 아이에게 자신이 믿는 종교를 따를 것을 강요했고, 자신만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는 이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앨리스의 모친이 앨리스를 사랑하면서도 딸의 실패한 결혼생활을 수치스러워 했던 것과 같이, 앨리스는 아이가 자신의 품을 떠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는 너를 항상 사랑한단다. 그러니까 너도 엄마를 항상 사랑해야 해.
루드비히는 일라이를 닮아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일라이도 앨리스도 같은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앨리스는 루드비히의 푸른 빛을 머금은 회색 눈이 누구로부터 유전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루드비히는 앨리스를 세상에 혼자 두고 제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같이 루드비히가 죽었을 것이라고, 간소하게나마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마음을 추스르라고 충고했다.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앨리스는 혼자만 늙어 가기 시작했다. 빛을 머금은 모래사장과 같은 금발이 다시 길게 자라는 일은 없었다. 새치가 섞이기 시작한 모래빛 금발은, 어느 순간부터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은으로 된 결혼반지는 난리통에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아들의 얼굴은 이제 명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아이가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앨리스는 서른 살이 넘었을 루드비히를 단번에 알아 볼 자신이 없었다. 앨리스에게 오롯하게 남은 것은 복부에 남은 제왕절개 자국과 그 위를 다시 찢고 지나간 암의 흔적이었다. 앨리스는 이것이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 전부였어.
그러니까 제발… 사라지지 마.
03. 당신의 삶은 몇 km의 시속으로 달리고 있는가
쉰네 살의 앨리스 리하르트는 더 이상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 몇 걸음 걸으면 휘청거리는 늙은 여자가 이 세상에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신은 그녀의 말대로 안배와 자비가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앨리스는 다시 한번 트럭을 운전하고 싶어 했다. 26년 전의 그 때처럼, 빈 고속도로를 걱정이라고는 괴팍한 주유소 사장이 제 값의 배달 금액을 쳐 줄 것인가, 따위의 한가한 일 정도밖에 없는 삶을 회상했다. 그 시절에도 앨리스에게 세상은 지옥이었다. 사람들은 애 딸린 젊은 과부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것을 좋아했고 감염자가 아닌 평범한 사내들조차도 그녀에게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살아만 있으면 어떤 비틀린 지옥도 단 하루, 한 시간, 어쩌면 10분 정도는 정삭적인 궤도를 타기 마련이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때가 언젠가 돌아오듯이 버텨내기만 하면 아주 잠깐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앨리스는 믿었다. 그래서 버텼던 것이다. 그녀의 주위를 돌며 언제고 약해진 몸을 집어 삼키려는 병마와 싸운 것은 오로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만날지도 몰라. 하지만 만나면? 남편이든 아들이든 이제 와서 다시 만난다고 그녀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것들은 실현되지 않는 희망으로 남아 있어야만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감염자나 약탈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병마가 아주 가까이 다가 와 그녀에게 죽음의 존재를 알렸을 때, 비로소 앨리스는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지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을 위해 살았지, 하고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전부 꿈이고 허상이었다. 마치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렸던 기억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느려졌다. 신도 악마도 아닌 자기 자신이 속삭이는 목소리를 왜 이렇게 느려지고 나서야 듣게 되었단 말인가? 이제 그만, 앨리스.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