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화앙투가 저의 망상 속에서 이미 공식 연애를 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위의 전제라서 캐붕 있을 수 있음 모형정원 트루 본 사람의 소박한 망상입니다.





당신의 잔인한 점에 대해 말해볼까. 당신은 날 사랑해. 그건 거짓이 아니지. 하지만 나와 세계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가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계를 구하겠지. 당신에겐 내가 필요해.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의 세계를 위해서 내가 필요해.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앙투아네트는 안화의 그 말을 듣다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서운한 말을. 앙투아네트가 받아치자 안화는 제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며 내가 틀렸다고 할 셈인가? 하고 물었다. 안화가 커피 한 잔을 거의 다 비워가는 동안 앙투아네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안화를 마주보고 있었다. 안화도 더 이상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앙투아네트는 안화의 빈 커피 잔에 커피를 조금 더 따라주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보지 그래. 안화가 먼저 침묵을 깨자 앙투아네트는 여전히 웃기만 했다. 당신답지 않은 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잔을 다시 채운 커피를 마시지 않은 채 안화가 반문했다. 나답지 않은 말들?

 

그래요.

어느 부분에서 그렇지?

나만 세계를 위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당신은 세계가 아니라 나를 구할 건가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 건 아닌가요? 앙투아네트의 웃음기 섞인 질문에 안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이블과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을 때는 눈높이가 맞았지만,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선은 기묘하게 엇갈렸다. 당신은 나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군. 안화가 테이블 한 켠에 벗어두었던 장갑을 도로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나는 둘 다 포기 안 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안화의 뒷모습을 앙투아네트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쫓는 수밖에 없었다.


 

<엇박자로 추는 왈츠>

 


안화와 앙투아네트의 연애는 엇박자로 추는 왈츠와 같았다. 둘은 대체로 비슷한 태도와 서로를 거스르지 않는 성향으로 잘 맞는 연인이라 자부할 수 있었지만, 매끄러운 턴이 지나고 나면 갑자기 곡조가 바뀌는 왈츠 곡에 발을 헛디디는 프로 댄서들처럼 가끔 예상치 못한 불화에 휘청거리곤 했다. 최근의 안화는 앙투아네트가 전혀 짐작하지 못한 방향으로 토라져 있었는데 물론 안화에게 토라졌다는 표현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 앙투아네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어떤 부분에서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라고 확정적으로 말하는 애인의 태도란 아무리 마음이 굳건한 앙투아네트에게도 조금은 충격적이라 몇 번이나 이유를 물어도 안화는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일관했다. 아마 며칠 쯤 지나면 이런 사유로 그랬다, 하고 서류로 정리라도 해서 가져올 남자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앙투아네트는 마음 한구석이 영 불안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러지, 라고 지휘사에게 지나가는 말로 한 번 물었으나 지휘사는 정말 몰라서 그래? 하는 질린 얼굴로 앙투아네트를 돌아볼 뿐이었다. 힌트라도 주면 안 되나요? 하고 지휘사를 몇 번이고 찔러보던 앙투아네트는 곧 안화가 지휘사와 에뮤사의 입막음까지 마친 뒤라는 것을 깨닫고 과연내가 스카우트한 남자,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앙투아네트가 둘만의 티타임까지 준비 했으나 안화는 매정하게도 커피 한 잔만 딱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도대체 왜? 마음속으로 물음표만 띄운 채 심란한 와중에도 기록보관실을 방주 위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앙투아네트는 곧 며칠 전 안화와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냈다. 중앙청으로 넘어온 끔찍한 양의 서류 작업을 에뮤사까지 포함해 세 명이서 밤을 새워 마치고 이른 아침을 먹던 중에 했던 대화였다. 일찍이 자기는 자러 가겠다며 크게 하품을 하고 자리를 비운 에뮤사를 두고 안화와 앙투아네트는 베이컨과 계란, 빵 몇 조각에 커피를 곁들이는 것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안화는 잼 나이프를 든 채로 당신은 내가 없어도 분명 잘 해냈을 테지, 라고 말했고 그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던 앙투아네트는 글쎄요, 전 당신이 필요한 걸요,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 때의 이상한 점이라고 한다면 원래는 잔을 다 비웠을 안화가 커피를 절반 정도 남았다는 것 밖에 없었으나 앙투아네트는 당시의 제 대답이 안화를 토라지게 만들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느 부분이지? 앙투아네트는 서류 정리를 마치고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괸 채 한참을 생각했다. 엇박자의 왈츠곡은 정박으로 돌아갈 기미가 영 보이지 않았다.

 

<미필적 고의>

 

안화와 앙투아네트 사이에 의도를 했든 그러지 않았든 냉랭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중앙청은 드러나지 않게 뒤집어졌다. 이 불화에 대해 가장 질색한 것은 지휘사였는데, 히로랑 싸우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둘이서 싸우느냐며 겁도 없이 안화를 붙잡고 흔들 정도였다. 안화에게 네 잘못이겠지! 앙투아네트는 잘못 안 해! 같은 소리를 퍼붓는 지휘사가 다수의 신기사에게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그 꼴을 구경하러 동방거리 사람들부터 교회 인간들까지 - 정확히 말하자면 세츠다. - 친히 구경을 나왔던 것이다. 덕택에 중앙청은 오랜만의 인력난 없는 하루를 보냈으나 안화의 심기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의 계산과 달리 안화가 왜 토라졌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한 앙투아네트가 슬슬 안화를 피해 업무에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방주가 어디로 이동할지 경로를 계산해서 쫓아갈 수 있었으나 안화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무작정 기다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래, 얼마나 거리를 두는지 보자. 그래, 며칠이나 말을 안 거는지 보자. 그래도 애인인데 일 얘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과연 언제가 돼서 하는지 보자……

 

보기는 뭘 봐.

 

아주 조금 평정을 잃은 안화가 한 손으로 눈가를 감쌌다. 호루스의 눈 때문에 머리 회전이 잘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연애라는 무지몽매한 이들이나 하는 것에 자신이 감정적으로 발을 들여 이 사달이 난 것인지 안화는 알 도리가 없었다. 신의 두뇌라고 해도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죄다 변수이기 때문에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적중하긴 어려운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울리지 않는 전술 단말기를 확인하던 안화는 곧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대체로, 전술적인 부분이 아니라면 안화는 앙투아네트에게 이겨본 적이 얼마 없었다.

 

노크하는 소리 이후로 3. 들어오세요, 라는 대답이 즉각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들으며 안화는 이것이 미필적 고의라는 것을 직감했다. 사고가 날 줄 알기 때문에 과속을 하고, 이만큼 치면 죽는 걸 알기 때문에 그만큼 치는 식의 고의적인 행동. 안화는 앙투아네트의 방문을 열고 문지방 너머로 발을 성큼 내딛었다. 앙투아네트가 그런 안화를 마주보더니 방긋 웃었다. 이 미필적 고의에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안화는 잠시 오랜만에 마주한 애인의 미소에 할 말을 잃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곤란해. 안화가 겨우 입을 열어 말하자 앙투아네트는 웃는 얼굴 그대로 맞받아쳤다. 어라, 제가 넘어간 적 있던가요. 누구도 문을 건드리지 않았는데 방문이 소리도 내지 않고 닫혔다. 안화는 굳이 닫히는 방문을 확인하지 않은 채 제 코트를 벗어 팔에 걸쳤다. 앙투아네트가 제게로 가까이 오라며 안화에게 손짓했고, 안화는 이런 부분에 있어 항상 명확히 승기를 잡기가 어려웠다. 중앙청의 여왕은 안화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다루는 것에 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앙투아네트가 속삭이는 소리에 안화가 다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게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라면 뭐지. 코트가 옷걸이에 걸리는 대신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앙투아네트가 침대 위로 몸을 눕히며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나요? 모노클이 박힌 눈가에 가벼운 입맞춤이 세례처럼 떨어졌다. 시선은 다시 위에서 아래로 맞아 떨어졌다. 긴 갈색 머리카락이 장갑 벗은 손끝에 얽혀들었다. 좋아, 타협하지. 엇박으로 추는 왈츠가 다시 시작 되었다. 정박자는 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다시, 꼭두각시가 아닌 연인들이 춤을 춘다. 당신도 내가 필요하겠죠.


우린 서로의 세계를 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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