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세상은 온통 하얗게 물든다. 그는 쌓인 눈 위에서 눈을 뜬다.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그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안다. 아멘, 짧은 읊조림 뒤에는 돌아오는 것이 없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누군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그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다.
Lumière Atre 어둠 속에 빛이 있으라.
01
그는 단 한 번도 제 부모에 대해 궁금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들 때까지 모든 아이들이 사제들 손에서 키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세계는 작았다. 다락방에 갇히지 않기 위해 그는 사제가 시키는 일들을 했다. 윤리적 관념은 배우지 못했지만 우월과 앞서간다라는 단어는 배우고 싶지 않아도 배우게 되었다. 식사 전에는 항상 기도를 드렸다. 그는 훔친 것들을 입에 넣고 삼키며 과연 신이 있을까, 라는 의심이 생길 때마다 다시 기도드렸다. 아멘, 아멘.
그는 자란다.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된다. 몇 번의 크리스마스 동안 그는 눈이 오는 날들을 세어두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몇 년동안 변함없이 거리에 울려퍼졌다.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그는 자신을 거둔 사제가 매일마다 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관망했다. 다락방은 이제 그에게 너무 작은 공간이 되었다. 그는 전쟁터로 떠나는 사제를 붙잡지 않았다.
사제가 돌아온다. 그는 신경이 손상 돼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사제를 마주한다. 프랑스는 전쟁에서 이겼고 독일은 패배했다. 그는 휠체어에 사제를 안아들어 앉힌다. 사제는 언제 그렇게 폭력적이고 언제 그렇게 강압적인 사람이었냐는 듯이 그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내가 너를 살렸으니 너도 나를 살려야 해. 그는 사제의 그런 시선이 우습다. 지극정성으로 그가 사제를 돌본다. 씻기고 입히고 먹인다. 어느 날 그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두고 사제를 그 안으로 밀어 넣는다. 물이 너무 차갑구나, 루미에르. 그가 웃는다. 밖에는 눈이 내린다. 그는 늙고 연약한 육체가 식어가는 물 속으로 잠겨드는 것을 관망한다.
02
세상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사람들은 전쟁의 아픔을 겪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로 묻혀 들어간다.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해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간단하게 학위 증명서를 조작하여 대학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쉽게 그에게 속아 넘어간다. 그는 서투르게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은 서투르게 속아 넘어간다. 그는 기도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평화 뒤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에게 날개가 돋아난다. 눈이 오는 날이었다. 그는 이것이 저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고통 뒤에 그는 아래로 추락한다. 날지 못하는 새들이란 언제나 지지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는 자신이 선택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저주이든 축복이든 자신은 우월해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우월과 앞서가다, 이 두 단어에 매진하는 자신에게 웃음을 터트린다. 소리는 기이하게 흘러 나온다. 명확한 괴물이 되었다는 것에 어쩌면 그는 안도한다.
03
그는 호기심으로 사람을 더 죽이기 시작한다. 계획은 치밀하고 뒤처리는 깔끔하다. 그는 다시, 눈이 내리는 날 한 저택의 문을 두드린다. 계세요. 다정한 얼굴의 임브린이 그에게 문을 열어준다. 그는 서투른 사람의 흉내를 낸다. 그는 더 이상 서투르지 않다. 임브린은 그에게 속아 넘어가고 그는 캐롤이 울리는 거리를 배경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복한 저녁 식사를 마친다. 그가 임브린을 죽인다. 목을 조르고 살려달라는 말을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긴다. 호기심에 의한 살인. 그는 유감이라는 단어와 미안하다는 단어가 같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쉽게 속아 넘어가고 쉽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임브린이 데리고 있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할 자격 없습니다. 이 말을 먼저 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묵음 기도 동안 그는 뒤에 아멘, 이 붙을만한 그 어떤 내용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가 천천히 손을 풀고 고개를 들어올린다.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빤히, 관찰하는 것처럼. 그는 한 아이와 시선을 맞춘다. 그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너, 나랑 같이 갈래?
04
그는 어린 왕자에 대해서 생각한다. 만약 그가 여우였다면 그는 어린 왕자의 목을 뜯어 죽였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장미였다면 그는 제 가시에 독을 심어 어린 왕자를 찔렀을 것이다. 만약 그가 조종사였다면 그는 어린 왕자가 보아뱀에게 물리기 전에 보아뱀을 죽였을 것이다. 아름다운 꽃은 꺾어야 제 것이 되고 화려한 새는 그에 걸맞는 새장이 필요하다. 그는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그 누구도 어린 왕자가 그렇게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그는 제가 데려온 아이를 꽤 아꼈다. 아무도 그것을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서툴다. 그는 날갯짓에 서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고 누군가를 믿는 것에는 더 서툴다. 아이는 그의 루프에 들어온 첫 사람이었다. 아이의 가는 목을 볼 때마다 그는 아이가 떠나기 전에 붙들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깨닫는 것이다.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이 되면 괜찮지 않느냐고.
05
눈이 내린다. 그가 하얗게 변한 세상에서 눈을 뜬다. 그는 직감한다. 자신이 저질러 온 일들이 있으니 지옥 가장 밑바닥에 처박힐 것이라는 걸. 누군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그는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다. 그는 하얗게 변한 세상을 걷는다. 거리에는 더 이상 캐롤이 울리지 않는다. 숨 막혀. 얼굴 모를 누군가가 그에게 등을 진 채로 말한다. 그는 입을 열어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추워.
그는 누군가가 하는 말에 갑작스럽게 추위를 느낀다. 그는 자신이 정장 자켓을 입고 있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누군가는 제 정장 자켓을 입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아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가 웃음을 터트린다. 웃음 소리는 닿지 않는다. 그는 하염없이 누군가를 따라 눈이 내리는 흰 세상을 걸어간다. 넌 괜찮을 거야. 그는 끝없이 그 말이 하고 싶어 누군가를 돌려 세우려 애를 쓴다.
그는 서투르다.
06
그는 추락하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추락은 아프지 않다. 그는 이제 그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바닥에 닿을 거라는 사실이 못내 우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그 우는 얼굴을 평생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넌 괜찮을 거야. 그는 긴 추락 동안 기도드리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Fall with me, would you?
닿지 않는 말들을 거두며 그는 손을 내밀었던 것을 거둔다. 날지 못하는 것은 자신 뿐이다. 깊은 어둠 속으로 빛이 떨어져 내린다. 그는 누군가가 빛 따위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기적은 없어. 그가 느리게 중얼인다. 그는 추락에 감사한다. 그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더 아프게 했고 덜 아팠기 때문이다.
I'm f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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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of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