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FOR MY FAIR, BAAL.
뒤 돌아보지 마요. 오르페.
가끔 들리는 환청으로 나는 무력감에 잠을 설친다.
*
Dike. 디케. 그 여자애는 참 이상한 애였다. 나는 노말로 20년을 넘게 살아왔고 그 애는 태어났을 때부터 센티넬이었다. 나는 센티넬이나 가이드와 같은 뮤턴트를 낮추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와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정부군 소속의 연구원이었고 그 애는 정의의 이름을 가지고 정부군 소속 센티넬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애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유독 이성에게 낯을 가리는 성격의 나는 어떤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강박에 휩싸여 너 이름, 존나 예뻐. 그래. 그런 쪽팔린 방법으로 처음 말을 걸었었다. 난 디케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 애는 나보다 6살이나 어렸고 웃을 때는 뺨에 보조개가 들어갔으며 등에는 온통 흉터가 가득했다. 너무 말라 가슴에도 팔다리에도 살이 없어 누가봐도 안쓰러운 모양새에 10대 아가씨. 그게 디케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내 스스로가 가이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스물 네 살의 겨울이었다. 나는 그 전까지 내가 한 번도 뮤턴트일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비스에 대해 알고 있었고 전쟁에 관해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그것이 단 한 번도 나와 관련있는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뮤턴트들에게 어느정도 연민과 동정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군에서 일하면서도 가끔 양심이나 이념이 정부군의 것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비인륜적인 실험들에 동참했고 뮤턴트들이 제 인권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나는 내가 노말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내 부모가 노말이었고 내가 연구하는 것이 뮤턴트였으며, 나는 언제나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느 스물 네 살의 겨울, 그렇게 깡마른 여자애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모든 검사에서 나는 정상이었다. Normal. 우습지. 세상에 아주 정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
DIKE
나는 내가 디케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애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렸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애는 아직 10대였다. 나는 그 애를 지켜주고 싶었고 아껴주고 싶었다. 나는 그 애가 오르페. 하고 부를 때마다 그 애를 껴안아주었다. 오르페. 당신은 이상하게 체온이 높아요. 품에 안아주면 그 애는 자주 웃었다. 다정하고 상냥한 아이라서 내가 담배를 피울 때면 언제나 옆에 와서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나는 디케를 위해서 담배를 끊었다. 그 애가 너무 마른 것이 안쓰러워서 무엇이든 먹이려고 요리를 시작했다. 좋은 옷을 입혀주고 싶어서 돈을 더 악착같이 벌었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넓게 보라는 생각으로 글자를 하나 하나 가르쳐주었다. 정의의 이름을 가지고 제 환각 능력을 여기저기 팔리고 다니는 불쌍한 아가씨. 스물 네 살의 나는 내가 그 불쌍한 아가씨를 나 혼자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정부군의 이름으로 높으신 분들에게 마약 대용으로 팔려다니는 그 여자 아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으면서 그 애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고 맛있는 걸 먹이려고 노력한다는, 그 몇 가지 이유만으로 내가 디케를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디케. 나랑 같이 도망가자.
나랑 같이 도망가서, 전쟁을 피해 살자.
마치 그녀를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가이드라는 판정이 난 뒤로부터 인식칩이 심어지는 것이 무서워서 디케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말을 꺼낸 것을. 노말이 아니라 뮤턴트가 되는 것이 무서워서 디케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내가 널 책임지겠다고 말해버렸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그 마른 손이 내 손을 잡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내가 디케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고, 아니. 아니다. 역시 이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디케를 사랑했을리 없다. 이건 여동생을 아끼는 것과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같이 도망쳤다. 디케의 몸에 박힌 칩을 빼내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우리는 말로만 들어봤던 심연, 어비스로 몸을 숨겼다. 도피 생활은 몇 개월동안 계속 이어졌다. 디케는 지나치게 힘들어했고 나는 매번 - 어쩌면 나를 위해서 - 디케를 독려했다. 나는 아주 이기적인 새끼였다.
*
먼저 잡힌 것은 디케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달리기가 다른 가이드나 센티넬에 비해서 느린 편이었으니까. 우리는 뛰었지만 나는 금방 붙잡혀 제압 당했다. 어쩌면 나는 그 때 죽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케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가라고 소리쳤지만 디케는 도망치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서 몸도 약한 그 애는, 나를 위해서 능력을 썼다. 그 애의 능력은 너무 미약하고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애가 정부군에게 쓴 환상이 몇 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 애도 나도 알았다. 오르페. 미안해요. 디케가 울었다. 나는 디케에게 손을 뻗었지만 디케는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뒤돌아보지마요. 앞으로만 가는 거야. 알았죠? 그 애는 아주 말랐고, 웃을 때에는 뺨에 보조개가 파였으며, 키가 작았고.
이제는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미안해요. 오르페.
그 말은 항상 나를 갉아먹는다.
*
바알. 그래. 그 애랑 어떻게 만났었지. 나는 디케가 죽은 이후로 방황했다. 살아는 있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것이 확실한지 확신하지 못했다. 센티넬이 가이드가 죽으면 폭주한다고 했었는데, 어쩌면 내가 센티넬이고 그녀가 가이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살하려고 했다. 무력감과 비참함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죽을지를 몰라서 여기 저기를 떠돌다가 반란군에 들어갔다. 사실 난 전쟁의 승패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기면 뭐 그 좆같은 정부군에게 엿이나 먹일 수 있겠군. 그 정도. 누가 이겨도 나와는 관련이 없었다. 내 걱정을 하고 계실 부모님에게는 죄송할 일이었지만 오르페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펜바흐라는 패밀리 네임을 앞세운 채로 전쟁에 참여한 순간부터 내 모든 목적은 오로지 죽음이었다. 나를 디케 곁으로 다시 보내줘.
나는 내가 디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확신하기로 한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정의를 내리면 내가 너무 불쌍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스물 네 살에 가이드가 되었고 가이딩에 영 능숙하지 않았다. 어쩌면 반란군에서도 내가 정부군 출신이었고 연구원으로 일했다는 특수한 점이 아니었다면 나를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바알은 디케 이후로 유일하게 나와 상성이 맞는 센티넬이었다. 그 애는 추위를 너무 탔다. 오펜. 오피. 그 애는 나를 디케가 오르페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나는 그 애가 이름을 불러주면 디케한테 그랬던 것처럼 바알을 껴안아 주었다. 내 체온은 항상 높았다. 나는 그래도 그 애가 추워하는 걸 달래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략 3년, 어쩌면 2년 반. 나는 바알의 가이드로 있었다. 그 애도 나보다 6살이 어렸다. 처음에는 그 애를 디케 대신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6살이 어리고, 이름을 부르면 안아주는게 습관처럼 익는. 가르쳐줘야할게 많은 센티넬. 디케와 다르게 나를 오피나 오펜이라고 부르는 매일 개기는 버릇없는 자식.
나는 내가 그 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로,
*
나는 조금 더 비참해졌다. 무력했다. 그 애를 책임져줄 수가 없었고 그 애에게 부담을 줄 수도 없었다. 글자를 가르쳐주고 과학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했지만 나는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매일 밤 잠을 설쳤다. 뒤돌아보지마요. 오르페. 디케의 목소리는 환청처럼 나를 갉아먹었다. 그 애는 자기 뇌에 벌레가 산다고 자기가 죽거든 제 뇌를 갈라달라고 소리쳤다. 나는 언제나 소리치는 애를 끌어안고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괜히 불퉁한 어조로 대꾸할 뿐이었다. 그 애는 곧 죽을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아파서 같이 곧 죽을 것처럼 말했다. 나는 곧 죽을 거라고. 네가 살아있으면 조금 더 견딜게. 하지만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래. 너는 언제나 내게 화를 냈다. 너는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글쎄. 나는 어느정도 진심이었다. 네가 죽으면 나는 따라서 자살할 생각이었다. 내 자살의 이유가 누구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디케. 라고 둘러댈 것이고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고 다시 정정할 것이다. 네가 죽으면 나는 굳이 살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내가 그 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 더 비참해졌다.
*
나는 너에게 그 별 것 없는 태양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건 내 이기심 같은 거였다. 너에게 글을 알려주고 과학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름을 쓰는 법을 천천히 다시, 내 이름이 오르페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래. 그러고 싶어서 나는 지상으로 데려다 줄게. 하고 선심쓰듯이 말을 꺼냈다. 사실 나도 알았다. 디케에게 같이 전쟁을 피해 심연으로 가자. 하고 말했던 것처럼 바알에게도 태양을 보러 지상으로 가자. 라는 식으로 내 이기심만 채우는 말을 꺼낸다는 것을. 모든 것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언제나 매 밤마다 네가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네 손을 잡아줄 때마다 내 기도가 네게 세례가 되기를 바랐다. 모든 것의 끝이 다가오자 나는 하늘이 이렇다고, 너에게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또 늦어버린 것 같았다.
PRAY FOR MY FAIR, OR BAAL.
*
내가 묻고 싶은 것은 2가지이다. 내가 너에게 네 마음대로 해라, 하고 말해버린 것을 돌이킬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너한테 태양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 아직 유효한지.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묻기로 한다. 내가 너를 붙잡으면 너는 내게 잡혀줄 것인지, 이것까지 마저 묻는 것이 날 터다. 나는 마지막 밤에 다시 네 차가워진 손끝을 잡고 기도한다. 아무렇지 않게 욕을 뱉고 아무렇지 않게 꺼지라고 소리치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 것은 믿지도 않는 신이 혹여 너를 돌봐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귓속에서는 여전히 이명이 들린다. 뒤돌아보지마요. 오르페. 앞으로만, 앞으로만. 나는 결국 뒤돌아본다. 네가 혹시나 아직 잡을 수 있는 근처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내가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짧은 기도를 남긴다.
PS, 미약한 체온으로 오랫동안 당신의 태양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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