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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디비전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할 수 있는 나오 양은 최근 다른 사람에게는 영 말하기 힘든 취미가 생겼다. 그녀는 이전에도 테리터리 배틀에 참여하는 각 디비전의 인원들을 이리 섞고 저리 섞어 퍼먹는 RPS에 일가견이 있었다. 나름대로의 네임드인 그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RPS를 하기는 해도 도덕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으나, 이제는 도덕의 도 자도 말하기 조심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도덕적 RPS는 포기하셨나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오 양은 이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잠깐만! 내가 근친을 파기는 파는데!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친형제라는 건 정말이지 떨리는 소재야>

 

친형제라는 것은 왜 이렇게 맛있는 소재일까? 어느 정도 면죄부라도 얻을 수 있는 이복형제나 의형제라면 차라리 나을 것을 야마다 가의 삼형제는 DNA 검사를 하면 누구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일치율 100%가 뜨는 친형제였다. 사촌까지는 결혼도 된다는 꽤 관대한 혼인법을 가진 일본에서도 일촌에 속하는 직계 형제자매들과의 친교 이상의 사랑은 금기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금지라고 적어 놓으면 더 관심을 가지고 먹지 말라고 하면 손으로 찍어서 한 입 맛본 뒤 오, 맛있는데? 하며 계속 먹다가 죽어버리는 데 있었다. 복어를 처음 잡아먹을 생각을 해낸 사람이나 독버섯을 처음 따 먹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인간은 파멸의 역사를 걸어왔다. 결과적으로 복어든 독버섯이든 어떻게든 맛있는 방식으로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더욱 틀려 먹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근친 소재 역시 위에서 말한 복어와 독버섯 등과는 그 결이 다르기는 해도 음지의 후죠판에서는 꾸준하게 누군가 먹고 공론화를 당하는 방식으로 희생자를 속출시킨 뒤 어떻게 잘 파야 근친을 파고도 욕을 안 먹고 살 수 있는가? 하는 논의를 거쳐 상대적 안정기에 진입했다. 나오 양은 삼형제 중에서도 둘째와 셋째를 알차게 엮는 지로사부 파였는데, 그녀의 취향이 두 사람에게 도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부로가 지로에게 저능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이치로에게 보이는 태도와 비교해서 형에 대한 존경심이 한참 부족한 것으로 혐관으로 느껴지는 한편, 그래도 사부로에게 나름대로 형 노릇을 하려고 덜컥 경고등 하나 켜지 않고 틱틱거리다가 다정하게 구는 지로를 보면 나름의 유대감도 간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둘이 찐근친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오 양은 생각했다. 맛있어! 맛있다고!

그러나 후죠판 내에서도 음지에 해당하는 이 맛있는 소재를 손질하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한 법이다. 괜한 비전문가가 손질한 복어나 독버섯을 먹으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재료와 떡밥이라도 제대로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오 양은 현실적인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문제와 윤리나 도덕을 무시할 수가 없어 도저히 남에게 지로사부를 연성하는 칼을 쥐여주지 못하고 스스로 불길 속으로 먼저 뛰어드는 오타쿠적 모범을 보이기로 결정했다. 워낙 RPS 짬밥을 먹어 온 연차가 긴 나오 양에게도 여간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으나 사부로와 같이 보드게임을 마지못해 해 주는 지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후죠의 피가 끌어 올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SNS 계정에 조금씩 연성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줄의 썰 정도로 풀어나가던 것들이 점점 반응이 오자 대담해져 후세터를 달고 이어지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정기 연재가 되다가 회지까지 내겠다고 인포를 작성해 올리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나오 양은 많은 익명 계정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쓸데없는 불굴의 의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직감했다. 자신이 후죠판에서 살아 온 N, 이번 지로사부 팬픽 회지는 대박이 날 것이라고.

 

<팬픽도 사랑도 전하는 야마다 가 우체통>

 

장남 이치로가 날마다 배달되는 조간신문과 함께 야마다 가의 우체통에 소중히 들어가 있던 소포에는 야마다 지로와 야마다 사부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존경하는 맏형이 건네준 소포를 받자마자 사부로의 의사는 딱히 묻지 않고 수령인이 둘이었는데도 열어 본 지로는 우로 봐도 좌로 봐도 신간 라이트 노벨 사이즈의 개인 회지에 고개를 갸웃했을 뿐이었다. <형제애의 종말 내 남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 라니. 제목과 표지만 보면 누가 봐도 신간 라이트 노벨인 것이 분명한데 수령인에 사부로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보니 그건 또 아닌 듯 싶었다. 이치로를 따라 온갖 오타쿠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지로와 다르게 사부로는 영 그런 것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회지를 펼쳐 본 지로는 도서 내에 등장하는 야마다 가의 이름에 눈썹 한쪽을 찡그렸다.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붙었던 스토커처럼 자신들에게도 그런 스토커가 붙은 건가? 라는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회지 내용만 보자면 스토커라고 의심하기에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랑사부로랑 서로의 진실된 마음이 사실은 사랑임을 깨닫는다고? 지로가 거실 한구석에서 멍청하게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입밖으로 냈을 때 사부로가 현관으로 들어오며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방금 뭐랬어?

 

사실 나오 양은 음지는 음지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우주 불변의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야마다 가의 우체통에 위험천만하게 자신의 회지를 넣어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오 양과 같지는 않은 법. 회지 구매자 중 망붕이 심하다 못해 복어나 독버섯을 생으로 먹고도 죽지 않고 일어나 개맛있는데?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희귀하지만 존재하기 마련이다. 회지 구매자는 원작자 나오 양의 허락도 없이 두 권이나 산 회지를 쪼르르 소포로 야마다 가에 보내 버렸던 것이다. 나오 양이 알게 된다면 속에서 천불이 나고 기절하다 못해 땅을 칠 일이었으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아직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야마다 사부로는 자신의 멍청한 둘째 형이 종종 정말 형답게굴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 한자도 제대로 못 읽고 시험 성적은 고작 15점 맞은 주제에 저를 챙기려고 드는 것이 눈에 보이면 열이 확 받아서 속도 좀 울렁거리고 얼굴도 홧홧해지는 감이 있었다. 단연컨대 단 한 번도 이런 감각이 호감이라든가 애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부로는 지로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면 일부러 저능이라는 단어로 지로를 호명해 화를 돋우거나 괜히 상대가 자신보다 멍청해서 깔보는 것처럼 지로를 업신여기고는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치로에 비해서 지로를 하찮게 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런 와중에 기껏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더니 이치로는 보이지도 않고 웬 이상한 도서를 사부로는 이때까지만 해도 또 라이트노벨인가 싶었다. - 읽고 있는 지로가 한눈에 들어왔으니 기가 찰 만도 했다. 지로는 무언가 대단히 억울한 사람처럼 너도 읽어 보든가, 하고 사부로에게 다른 한 권을 내밀었지만 사부로는 지로의 손을 탁 쳐내며 라이트 노벨 같은 건 안 읽는다고 밀어냈을 뿐이었다. 지로는 지로대로 억울했다. 스토커 소행이라고 의심할 정도로 평소 자신과 사부로 사이의 티키타카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는 회지는 글 속에 형제들이 느끼는 감정 묘사가 구체적인 탓에 지로 본인도 형제애의 종말 내 남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 - 이 코앞인 상태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로의 계속되는 권유 아닌 권유에 진 사부로가 지로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회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 거실에는 갑작스러운 정적이 감돌았다. 지로가 먼저 그 정적을 깨트렸다. 너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냐? 평소와 다름없던 야마다 가의 거실은 이치로가 지금 딱 들어오면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미묘한 공기로 가득 찼다. 회지를 접어 탁자 위로 내려놓은 사부로는 제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로 지로를 바라보다가 네가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고? 하며 받아쳤다. 무슨 대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대치 상태에 놓여 있던 형제는 몇 번이고 네가 먼저 말하라든가, 할 말 있는 건 맞냐, 등의 말을 말싸움 하듯이 주고받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말을 뚝 멈췄다. 다시 정적이 이어지자 평소처럼 결국 동생에게 이기는 것을 포기한 지로가 절반쯤 패배를 인정했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너 진짜 귀엽지 않아. 한탄하듯 중얼거린 지로는 틱틱거리는 표정을 일부러 앞세우는 제 동생을 향해 팔을 뻗었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너 좋아하는 거였다고. 이제 됐냐? 바야흐로 나오 양이 자신도 모르게 근친 사랑의 큐피드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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