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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영국 웨스트 엔드의 알아주는 단골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16세기 이후부터 나름대로 영문학으로는 알아준다는 다채로운 천재들 – 디킨스부터 워드워스까지 –을 배출해 낸 나라에 살면서 연극 한 번 보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가 문학청년임을 자부하는 J에게는 정말이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J는 상당히 프라이드가 높은 관람자였는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새로운 작가들의 창의적인 무대 구성을 ‘천박하다’라고 표현하는 전형적인 고전 비극 러버에 가까웠다. 연극이나 뮤지컬 쪽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J와 같은 사람들을 겉멋만 든 예술 애호가라고 조롱거리로 삼곤 했지만 빈곤한 예술계에 돈을 흔쾌히 쥐여주는 것도 뒤떨어진 시대 비극에서 고통 대신 재미를 느끼는 J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저 J에게 정말 예술에 대해 전문가시군요! 하고 띄워주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연극계도 자본주의를 피할 수는 없었던 탓이었다. 미디어 산업에 대부분의 관람객들을 빼앗긴 뒤로는 더욱 그랬다.
그렇게 스스로가 연극이나 뮤지컬 관련 종사자는 아니더라도 그 분야를 많이 보고 접했으며, 다른 재미만 추구하는 관람객들과는 다르게 깊이를 가졌노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J의 눈에 새롭게 든 배우가 바로 조슈아, 본명은 카넬리안 에드먼드였다. - 편의상 이후부터는 카넬리안이라는 호칭으로 통일하겠다. - 카넬리안은 연극배우답지 않은 아름다운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잘생긴 배우들은 비주얼로 캐스팅 된 것이기 때문에 연기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J는 처음 카넬리안을 봤을 때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까다로운 미식가 같은 태도로 그의 셰익스피어 극을 관람했다. 막이 두 차례 지나고 세 시간 길이의 공연이 끝났을 때 J는 커튼콜에서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마치 연극을 위해 태어난 마법사 – J가 만약 카넬리안이 호그와트 출신의 진짜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뒤집어졌을 것이다. - 같은 존재가 실존할 수 있다니! J는 평소 자신의 배우를 좋아하는 건 연극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신조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카넬리안의 다음 작품이 고전이 아니더라도 따라가서 볼 것을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공개연애라니 오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일개 배우의 팬으로서기는 하지만 카넬리안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J에게 비극아닌 비극이 찾아온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사실 카넬리안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일이 드문 스테이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운 얼굴 때문에 급속도로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었다. 연기라도 못하면 몰라 연기까지 잘했다. 웨스트 엔드에서 워낙 스크린으로 진출해 성공한 배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카넬리안은 스테이지 배우 치고는 스캔들에 자주 휘말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J는 그다지 카넬리안의 스캔들에 사생팬처럼 눈물을 흘리며 우리 조슈아가 그럴 리 없다고 땅을 치는 타입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같은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스캔들이 터졌기 때문에 정말 그 상대, 마그놀리야 카르트와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J에게는 덕분에 마그놀리야의 끝이 하얗게 물든 밝은 금발도 카넬리안의 금발만큼 익숙하게 느껴졌다. 몇 달 전 터진 스캔들도 마그놀리야와의 것이었으므로 J는 참나, 파파라치들도 끈질기네, 라고 생각하며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요, 기자 양반? 우리 조슈아가 공개연애라니! J는 몇 번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새로 고침하면서 자신이 읽은 글자가 제대로 된 영어가 맞는지 확인했다. 한 36번 정도 읽어도 같은 글자였다. 머글의 신문은 사진이 움직인다거나 글자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었다. J는 현실을 한참 동안 부정했다. 하… 조슈아. 너만은 유니콘처럼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기나긴 현실 부정 타임이 지나자 현자 타임이 찾아온 J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이건 배우가 아니라 연극을 사랑했던 나답지 않아! 이렇게 된 이상 가장 문학청년다운 방식으로 나의 조슈아, 나의 카넬리안을 보내주자!
그것이 카넬리안과 마그놀리야 팬픽션의 대 네임드가 된 J의 첫 시작이었다.
<대본도 있는데 한 번 하면 안 될까>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온갖 면들을 다 보고 자란 카넬리안과 마그놀리야는 스캔들로 한참 골머리를 앓다가 이렇게 된 거 사귀자, 하고 공개연애를 선언한 뒤부터 동거까지 하고 있었다. 아직 20대 초반의 젊고 풋풋한 청년들이 동거를 한다고 들으면 다들 어느 정도는 우, 하는 야유를 보내며 서로 뜨거운 사이인가 본데, 하고 농담으로나마 웃어넘겼지만 둘은 실제로 매우 건전한 관계였다. 사귄 지 몇 달이 지났어도 키스 이상으로는 진도를 나가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러나 팬픽이란 뭐다? 현실에선 키스밖에 안 했어도 활자로는 갈 데까지 가는 것이 팬픽이었다. 둘이 같은 집 현관에서 나오는 파파라치 컷이 인터넷을 돌고 돌게 되면서 처음에는 공개연애를 인정하지 않았던 카넬리안의 강경보수 팬들도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행복하세요, 하며 두 커플을 훈훈한 시선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바라보는 시선에 악의가 아니라 호의가 담기게 되니 그다음에는 두 남녀에 대한 망상으로 이어졌고 숨 쉬듯이 가상의 헤테로를 찾아 헤매는 영국의 찐 오타쿠들은 이미 공식인 커플을 엮어 먹는 건 문제 없지 않을까? 하고 팬픽 연성을 은근슬쩍 시작하기도 했다. - 그중 J가 끼어 있었다. - 주로 지난 카넬리안의 작품들에서 여자주인공의 역할을 마그놀리야로 치환해서 IF 버전으로 쓰는 내용이 인기를 끌었다. 연극배우다 보니 풀이 작아 그렇게 판이 크지는 않았으나 거의 1일 1연성 급으로 판을 먹여 살리는 작가들이 있어 꽤 왕성하게 돌아가는 편이기는 했다. 게다가 소설마다 NSFW가 붙은 – NOT SAFE AT WORK – 경우가 꽤 많아 – 영미 팬픽에서 19금이라는 뜻이다. - 실제 활동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구독자들이 더 많았다. 카넬리안이 J가 가장 처음으로 서지 출간한 자신과 마그놀리야의 19금 팬픽을 받게 된 것은 공연이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 전달받은 꽃다발들 사이에 그 팬픽이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J가 알면 기함하고 뒷목을 잡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J의 팬픽을 사서 읽은 카넬리안의 갓 성인이 된 열성팬은 자신의 행동이 개-박살이라는 사실을 짐작도 하지 못한 채로 RPS 팬픽을 팬픽 주인공 본인에게 전달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점은 카넬리안이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면 그렇게 감정이 풍부하거나 이런 사소한 문제로 어린 팬을 곤경에 처하게 할 만큼 날카로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팬픽의 페이지를 넘겨 보던 카넬리안은 진지하게 이것을 마그놀리야에게 연기까지 섞어서 직접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J가 알게 된다면 쓰러질 일이었다.
카넬리안과 마그놀리야는 배우와 오러라는 영 다른 분야에 종사했으나 둘 다 늦게 끝나기는 매한가지인 직업이라 퇴근 시간은 엇비슷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방금 귀가했는지 샤워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던 마그놀리야에게 다녀왔어, 하는 인사와 함께 성큼 다가온 카넬리안은 리야, 하고 자신이 오늘 받은 팬픽을 그녀에게 들어 보였다. 마그놀리야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19세 미만 관람 불가의 빨간 딱지였다. 그게 뭐야? 하고 물었을 때 카넬리안은 웃으며 읽어 줄 테니까 한 번 들어 봐, 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 팬픽은 대 네임드 J가 심혈을 기울여 쓴 첫 출간작으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소재로 삼아 야하고 재치있게 2차 창작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중간중간 연극을 사랑하는 문학청년 J의 성향을 반영하여 희곡 부분처럼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카넬리안은 줄글로 이루어진 후반부의 노골적인 러브씬 부분을 대신해서 희곡 부분으로 적힌 지문만 한 문장 먼저 마그놀리야에게 읽어 주었다. ‘리야는 거칠게 문틈 사이로 카넬리안을 밀어 넣었다.’ 매끄러운 카넬리안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마그놀리야의 성향 때문에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방이 잠시 침묵으로 가득 채워졌다. 카넬리안은 계속 다음 지문을 읽었다. ‘위험하게 함부로 다치지 마. 넌… 내 거니까.’오러인 마그놀리야는 순간적인 순발력을 발휘해 카넬리안으로부터 팬픽을 빼앗고는 그게 뭐야, 라고 말하며 카넬리안의 등을 때렸다. 누나, 아파… 하고 카넬리안이 불쌍한 척을 할 때까지 마그놀리야는 넌 내 거니까, 하고 말하는 카넬리안을 마저 퍽퍽 쳤다. 잔뜩 맞았음에도 꽤 멀끔한 얼굴을 유지한 카넬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리야, 우리 대본도 있는데 한 번만 이대로 해 볼까? 마그놀리야의 손에서 툭, 하고 쥐었던 J의 팬픽이 – 다시 말하지만 J는 기절할 것이다. - 바닥으로 떨어졌다. 키스 이상의 진도를 나가기에 최적의 밤이 무르익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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