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ㅇㄲ님 신청 커미션입니다.
샘플 공개이므로 무단 복사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 위 이미지는 신청자분께서 직접 제작하신 이미지입니다.
조슈아 경, 뭐하세요? 샬롯이 아발론 성 내부 정원에 조각처럼 앉아있던 조슈아 레비턴스에게 말을 건넨 시각은 오후 1시 경이었다. 쉬고 있습니다. 정원에 자리 잡은 벤치에 같은 자세로 앉아 오전부터 무념무상한 얼굴로 멍을 때리던 – 본인은 휴식이라고 주장하지만 – 조슈아는 누가 제게 말을 거는 것이 영 귀찮다는 듯 눈을 감았다. 묻는 말에는 꼬박꼬박 대답을 하면서도 몸을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샬롯은 오늘따라 더욱 기력 없어 보이는 상대를 바라보다 곧 조슈아에게 감기 들지도 모르니까 너무 밖에만 계시지는 마시구요, 하고 걸음을 옮겼다. 조슈아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는 씩씩한 걸음걸이의 샬롯을 보며 이제 자신을 더이상 귀찮게 할 사람은 없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샬롯이 향한 방향은 로드의 접견실 쪽이었다. 더 큰 귀찮음이 제게 닥칠 것을 예지하지 못한 채 조슈아는 벤치에 눕듯이 등을 기댔다.
<손톱 밑이 물드는 것을 조심하세요>
로드가 조슈아 레비턴스를 접견실로 불러들인 것에는 딱히 이유가 없었다. 요즘 우울해 보이던데. 딱 그 정도의 감상 때문에 조슈아는 호출을 받고 터덜터덜 접견실로 들어왔다. 일 있으셔서 부르신 거 아닙니까? 하고 조슈아가 묻자 로드는 그래, 일 있지. 너한테는 안 시켜, 하고 조슈아에게 접견실 한쪽에 있는 티 테이블을 손으로 가리켰다. 차나 한 잔 하고 가. 조슈아는 왜요? 라고 소리 내어 물으려다가 상대가 제국을 점령해 나가고 있는 신흥 강국 아발론의 군주라는 것을 떠올리고 얌전히 자리로 가 앉았다. 따로 시키실 업무 없으면 이만 퇴근시켜 주셔도 좋은데요. 대신 조슈아는 소신 있게 시킬 일 없으면 그냥 제 거처로 돌려보내 달라는 말을 툭 꺼냈다. 유능한 행정관 루인을 옆에 두고도 로드의 책상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가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빈말로도 쉽게 도와 드릴까요? 라는 말을 한 번 꺼내지 않는 조슈아도 조슈아였지만 사람을 앞에 앉혀두고 업무를 보면서 한 번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로드의 성정도 만만치 않았다. 조슈아는 제 앞에 가지런히 놓인 푸른색 찻잔을 바라보며 이것도 루인이 준비했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항상 로드의 접견실에서 보이던 루인조차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접견실에는 조슈아와 로드 둘뿐이었다. 꼭 로드의 푸른색 눈을 생각나게 하는 찻잔 손잡이를 손으로 쥐어보니 꺼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끝부분이 따뜻했다. 루인 같은 사람이 있으니 굳이 자신에게 도와 달라고 할 필요도 없는 거겠지. 조슈아는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온전히 찻잔 바닥에 시선을 빼앗겼다. 로드의 사각거리는 펜 소리가 멈췄을 때, 조슈아가 물었다. 다들 파견이라도 나갔나요? 그 질문에 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넋을 놓고 있을 거라면 저녁 무렵에는 쌀쌀해지니 정원 벤치보다 내 접견실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
왜요?
조슈아는 이번에도 입 밖으로 이 말을 꺼내 묻지는 않았다. 타이밍 좋게 루인이 끓인 홍차가 담겨 있는 덮개로 감싼 티포트를 들고 접견실로 들어왔고, 곧 로드에게 귓속말로 짧게 몇 마디를 속삭이더니 조슈아에게도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주고는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금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조슈아는 한 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뱉는 목소리에 한숨이 섞였다. 로드… 설마 저 하나 쉬게 하자고 접견실을 비워둔 거라면……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로드가 손수 조슈아의 찻잔에 찻주전자를 기울여 홍차를 따라주었다. 찻잎을 잘 우린 홍차에서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향이 났다. 아무것도 안 시킬 테니 그냥 옆에 있으라고 부른 거야. 홍차를 한 모금 마신 조슈아가 결국 입안으로만 삼켰던 말을 뱉었다. 왜요? 찻잔 손잡이로부터 따뜻한 열감이 조슈아의 손끝에, 손톱 밑에 옮겨붙고 있었다. 로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의자에 등을 편하게 기대며 대답했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나랑 같이 두면 내 생각이나 하겠지. 접견실의 창틀을 따라 오후의 해가 뉘엿뉘엿 져 가며 노을도 어둠도 아닌 그 사이의 애매한 빛줄기가 실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난 네가 좋으니까, 네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쉬었으면 하거든. 그건 꼭 갓 끓인 홍차의 색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슈아는 로드의 얼굴 일부분이 그 빛에 물든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제 손의 절반도 그 빛에 물들어 있었다.
<고대에는 팬픽이라는 게 있었대>
프라우 레망은 최근 아발론 성내에 도는 소문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기꺼이 나서서 하고 있었다. 왜? 재밌으니까! 물론 프라우가 이렇게 성을 휩쓸고 다니며 사람들의 오해를 망상 또는 창작의 연료로 불태워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루인이 이미 로드에게 상황 설명을 마친 뒤였기 때문이었다. 루인의 태도로 미뤄봤을 때 로드는 그냥 두라고 대답한 것이 분명했다. 작은 불씨를 그냥 두면 큰 불꽃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프라우는 신이 나서 성내를 쏘다녔다. 팬픽이라는 게 뭐냐면 말이지… 하고 성에서 일하는 어린 사용인들에게 조슈아와 로드에 대한 헛된 망상을 심어주는 프라우 뒤로 루인은 상냥하게 웃고만 있었다. 사실 한 나라의 군주가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이 썩 명예나 체면 부분에 있어서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로드가 그냥 두라고 하니 루인 역시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누가 봐도 다 알 정도로 로드가 조슈아를 싸고도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세뇌와 최면이 풀려 심신이 미약한 상태의 사람을 오합지졸의 병사들조차도 신경 쓰는 로드가 돌보는 것일 뿐, 이라고 포장해 보려고 해도 로드는 조슈아에게 조금 과했다.
그 과함을 조슈아 역시 모르지 않았다. 성내 사용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더 노골적으로 따라붙게 된 것을 한때 제국의 정예 집행관이었던 조슈아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짓에 대한 업보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적의를 보이는 줄 알았으나, 조슈아는 곧 그들의 시선이 어떤 의미로든 로드와 ‘함께’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제게로 쏟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라우에게 선동당한 한 사용인으로부터는 은밀하게 요즘 사용인들로부터 유행한다는 조슈아와 로드 사이의 가짜 연애 소설, 프라우의 말로 하자면 팬픽까지 조달받았으니 조슈아가 끝끝내 모르는 척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처음에 조슈아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몇 페이지 읽다 말고 제 눈에 띄지 않게 방 책상 서랍 가장 안쪽에 그 팬픽을 처박아 버렸으나 곧 며칠 지나지 않아 온갖 명목으로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니 내용 전부를 읽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조슈아는 적어도 자신이 넋을 놓고 있을 때 로드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상당히 애를 썼다. 그건 휴식에 전혀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슈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접견실에서 함께 홍차를 마신 뒤로부터 조슈아는 종종 로드의 그 다정한 말이나 홍차와 같은 노을빛으로 물든 얼굴을 떠올렸다. 그게 호의나 존경이라기보다는 호감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것을 조슈아는 열여섯 먹은 사춘기 남학생이 아니었으므로 이미 알고 있었다. 간만에 한적한 오후 휴식 중에도 이런 잡념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자 조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드의 접견실로 향했다.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었다.
내 탓이라고? 로드는 조금 황당해하는 얼굴로 눈썹 한쪽을 찡긋하며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만약 네가 나와의 이런 불미스러운 소문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면…… 조슈아는 비틀리려는 입매를 억지로 꾹 다물고 우수하고 충성스러운 신하처럼 펜듈럼을 든 손을 뒤로한 채 뒷짐 진 자세로 앉아있는 로드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있어 봐야 자신은 절대 루인처럼 다정한 행정관으로 보이지는 못할 테지만, 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유도 제대로 모르면서 기분이 나빠진 조슈아는 로드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로드는 조슈아의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무슨 결론을 알아서 내린 것인지 한숨만 쉬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뒀던 건데 네가 싫다면 전부 찾아내서 없애 줄 테니 표정 좀 풀어. 로드의 말에도 조슈아는 그 자세 그대로 서서 이렇게 물었다. 말투는 조금 삐딱했다: 별일 아닌가요?
조슈아는 자신이 아주 크게 실수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아발론의 군주였고, 자신은 그의 신하였으니까. 그러나 세뇌에 걸린 것도 아닌데 여전히 마음대로 그만둘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만일 이 문제의 근원을 따지자면 조슈아는 장담컨대, 전부 로드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누가 그렇게 신경 써 달라고, 다정하게 대해 달라고 한 적 있었는가? 책상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금세 가까워진 거리에서 조슈아가 몸을 숙여 로드에게 입을 맞추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상대가 그 입맞춤을 밀어내지 않고 팔을 뻗어 어깨를 잡아 오는 방식으로 응한다면 더욱 그랬다. 조슈아는 이 시점에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이 막무가내로 다정한 상대, 로드에게 감겼노라고.
'Commission > Fanfic Ty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미션] ㅂㄹ님 팬픽 커미션 (0) | 2020.06.29 |
---|---|
[커미션] ㅅ님 팬픽 커미션 (0) | 2020.06.28 |
[커미션] ㅋㅅ님 팬픽 커미션 (0) | 2020.06.25 |
[커미션] ㅍㄱ님 팬픽 커미션 (0) | 2020.06.23 |
[커미션] ㅂㅂ님 팬픽 커미션 (0) | 2020.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