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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부에 속해 있는 호시노 양은 동급생인 친구로부터 학교 밴드부 공연을 보러 가자는 제안을 받고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호시노 양은 일본의 고교생들이라면 싫든 좋든 웬만하면 억지로 다 들어야 하는 동아리 활동을 듣지 않고 명문대로의 입시를 핑계로 간신히 귀가부로 빠질 수 있었다.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동급생 중에서도 가까운 친구들은 몇 없었으므로, 밴드부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는 상대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실은 약 한 시간 반 뒤에 산술 학원 수업이 예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학교 밴드부의 수준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다고 저렇게 열을 올리는 친구가 한심해 보였으나 당장 다음 날 점심시간을 함께 해 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호시노 양은 학교 밴드부 공연을 보러 가 아주 잠깐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곧장 학원으로 향할 치밀한 내적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던 것이다.
<고등학교 밴드부에 진심전력이어도 되는 걸까>
학교 밴드부 EDEN은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밴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지역 내에서 광범위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일단 있는 곡들로 공연을 하는 다른 밴드와는 다르게 밴드 내 신디사이저 연주자 A가 곡을 작곡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사유를 차지하는 가장 큰 부분이었다. 원래 그냥 가수보다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는 게 더 간지나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무엇이든 일단 천재 속성에 대체로 호감을 표하는 대중적인 고등학생들은 – 물론 개중에는 아니꼬워하거나 시기와 질투를 숨기지 못하는 족속들도 있었다. - 음악 쪽에 천부적인 소질을 드러내는 A에게 대체로 쉽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밴드부 역시 아이돌과 같아서 멤버 하나가 잘한다고 그룹을 견인 트럭처럼 혼자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던가? EDEN에서 볼 멤버가 A밖에 없었더라면 호시노 양도 이렇게 쉽게 산술 학원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래가 좋아도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돼지 멱따는 소리라면 아무 소용도 없었을 테지만 밴드 보컬인 B는 목소리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EDEN의 보컬 B는 게다가 생긴 것도 훌륭했다. 적어도 호시노 양이 보기에는 그랬다. 처음 무대 조명이 들어왔을 때 호시노 양은 밴드부도 이제 얼굴 가려 가며 뽑네, 하며 바람직한 세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B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몰입해서 학원 수업 시간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고 모든 공연이 끝날 때까지 두 시간 동안 강당에서 함께 온 친구의 팔을 꼭 붙잡은 채 서 있게 되었다. 뭐야, B 군 완전 내 최애 재질…… 결국 호시노 양의 휴대폰으로 학원 쪽에서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올 동안 호시노 양은 친구와 함께 프로 밴드부도 아닌 고등학교 아마추어 밴드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말았다. 다른 밴드부 팬클럽에서 스카우트가 온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문대 입시를 노릴 만한, 유망한 장래를 가졌던 호시노 양의 학년 말 성적이 갑작스럽게 뚝 아래로 곤두박질친 이유였다.
물론 호시노 양의 케이스는 아주 극단적인 편이었으나 학교 내에는 EDEN을 쫓아다니는 팬클럽 역시 존재했다. 프로도 아니고 학생으로 이루어진 밴드부 주제에 무슨 팬클럽까지? 싶을지 몰라도 소속 멤버들이 전원 프로에 준하는 실력과 아이돌스러운 외모를 가졌으니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 팬클럽에 가입하면 EDEN의 팬클럽 1기 앰뷸럼을 준다는 소리에 있는 용돈 없는 용돈 다 털어가며 친구와 함께 공연이란 공연은 다 쫓아다니기로 맹세한 호시노 양은 산술 학원을 포기하고 팬클럽을 다단계 루트로 가입한 그 날, 친구는 호시노 양에게 EDEN 내 최고 메이저 RPS가 무엇인지 은밀하게 알려주었다. RPS가 무엇인지 몰랐던 호시노 양은 참된 우정이 무엇인지 아는 친구의 영향으로 그만 음지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잘 들어, 호시노. A루가 메이저야. 떡밥에 배부를 수 있으려면 A루를 파야 하는 거라고. 호시노 양이 A루? 하고 그게 뭐냐며 되묻자 친구는 아주 명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AXB. 저 곱하기는 엮는다는 뜻이야. 인간 기호의 최대 발명이지.
<망붕은 병이야 죽어야만 고쳐>
음지의 후죠들이 이렇게 프로도 아닌 학교 밴드부 남학생들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게 된 일은 오로지 그들의 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A와 B는 RPS를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혹시 둘이 사귀나? 싶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애초에 A가 몇 번이고 권유해서 B를 밴드 보컬로 영입시켰다는 것도 그렇고 B가 A의 음악적 뮤즈라는 사실도 그렇고, RPS를 떠나서 누구나 그 둘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기 쉬웠다. 게다가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도 안 막기로 유명했던 A가 B를 자기 밴드에 완전히 끌어들이고 둘이서 붙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상대를 갈아치운 적이 있었냐는 듯 얌전해진 점도 어딘가 수상했다. 학교 밴드부를 상대로 한 한 줌짜리 후죠라고 한들 후죠는 후죠. 매의 눈으로 항시 메이저 RPS A루를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떡밥이 있을까, 하며 기대에 찬 시선으로 관찰하는 팬들에게 교복 셔츠 위로 언뜻 보이는 B 목의 붉은 자국 – 실제로 A가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 그게 모기 물린 자국이라고 해도 팬들은 알아서 곡해했을 것이다. - 이나 A와 B의 스스럼없는 스킨쉽은 매 순간이 연성 소재였고 망상 거리였다.
빛이 밝아지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고작 고등학교 동아리 수준의 밴드부지만 실력 수준이 프로였기 때문에 EDEN은 웬만한 프로들도 초대받기 어렵다는 도내의 밴드 음악 페스티벌에까지 초청되었다. 호시노 양은 이번에도 명문대 입시를 위한 논술 특강을 핑계로 학교를 조퇴하고 나와 논술 선생님을 찾아가는 대신 다른 팬클럽원들과 함께 아마추어 고교 동아리가 프로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을 제 두 눈에 담기 위해 왕복 지하철 표를 끊었다. 저녁에 시작하는 페스티벌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오전부터 출발해 이른 오후에는 입장 줄을 차지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길고 긴 대기 시간 동안 이어지는 입장 대기 줄에 서서 호시노 양은 팬클럽 내에서 자신과 가장 RPS 캐해석이 맞는 친구 – 처음 같이 공연 보러 가자고 한 그 애가 맞다. - 와 본인의 최애 B와 차애 A에 대해 온갖 버전과 상황의 해석을 늘어놓았다. 호시노 양은 언제 자신이 그렇게 내성적인 사람이었냐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열을 내며 떠들었다. 아니, 글쎄. A는 공인 게 분명한데 저번에 다른 애가 있지…… 흔한 신이시여 리버스를 멸하소서의 순간이었다. 페스티벌 입장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나오고 호시노 양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EDEN의 프로 데뷔를 보기 위해 스테이지 안쪽으로 입장했다. 이 세상 밖에서는 호시노 양의 논술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 호시노 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실한 덕후는 계를 탄다>
B는 대기실 안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B는 밴드의 보컬 자리를 맡아 온 뒤로 무대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모든 관심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목소리가 듣기 좋은 것과 노래나 음악을 좋아하는 일은 기타와 베이스만큼이나 다른 것이었다. A와 같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진작 그만뒀을 일이 프로 판까지 오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못해 속이 울렁거렸다. A가 B의 뒤에서 팔로 어깨를 감싸며 긴장 풀라는 듯이 날개뼈 부근을 두드려 주었다.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독려였지만 B는 A가 닿는 것만으로 오히려 몸이 더 뻣뻣하게 굳었다. 키스며 그 이상의 것이며 이미 다 저지른 뒤인 데도 이런 다정한 스킨쉽 한 번에 동요가 일었다. B는 자신이 어떤 정신으로 아무나 만나고 다니던 A에게 그러면 차라리 나랑 자면 되잖아, 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A 때문에 저지른 일이 함께 지내 온 시간 동안 몇 개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B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A는 그런 B를 잠깐 바라봤다가, 무대에 올라가기 전 B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준비한 두 곡의 노래가 전부 끝나고 진행자가 팀의 리더가 누구인지 몰라 가운데에 선 B에게 인터뷰를 걸며 마이크를 쥐여줬을 때 제대로 모든 걸 끝냈다는 안도감에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뚝 눈물을 흘렸다. 본인도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B가 빠르게 제 눈가를 가리자 놀란 진행자가 멘트를 치려다 말을 씹었다. 순식간에 어색해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A가 다른 마이크를 건네받아 매끄럽게 처음 진행자가 뱉은 질문을 농담을 섞어 가며 유머러스하게 받아쳤다. 무대 아래로 퇴장하는 순간까지 A는 자연스럽게 우는 B를 조금 놀리면서도 등을 쓸어 주거나 젖은 얼굴을 손등으로 문질러 주며 위로했다. 그리고 이 모든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내려가는 순간까지의 광경을 무대 가까이서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게 된 호시노 양은, 정말 떡밥이 흘러넘쳐서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성실한 덕후는 늘 계를 타는 법이었다. 엄마, 지금 명문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거 찐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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