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여름이었다. 미루고 미루다 모든 것이 결정된 6월쯤에야 그가 내게 프로포즈를 했기 때문에 5월의 신부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인생의 중대사들 중 하나를 해치우는 데 바빠 작은 불화나 문제는 모른 척 넘기거나 드러나지 않게 덮어둔 채로, 나는 조금 끼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 남편은 올해 결혼기념일은 넘기는 게 좋겠지, 하고 내게 넌지시 물어왔다. 둘째가 수험생이니 집안의 대소사를 신경 쓸 정신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도 나도 이제 50줄이 넘었으니 한 해 쯤 넘어간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첫째도 군대에 가 있으니 둘째가 재수를 하지 않는다면 큰 애가 제대한 뒤에 다 같이 가족 여행을 가도 좋을 것이다. 나는 내 눈치를 보는 남편에게 웃어주었다. 남편은 내 웃음에 크게 안도했다. 여보, 난 정말 당신하고 결혼한 게 행운인 것 같아. 그건 남편의 입버릇이었다.
꿈에서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첫 애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몇 달 전에 맞췄던 드레스는 가슴과 배가 꼈다. 시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젊은 애가 자기 관리도 못 하고 말이야, 라는 말에 괜히 우리 엄마만 눈치를 봤다.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너무 그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주례 앞까지 버진 로드를 걸었다. 전통 혼례가 아니라 서양식으로 결혼을 한다며 집안 어른들이 불평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대학 동기들은 나를 향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하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부케를 던졌고, 누가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혼여행은 해외로 가는 건 임산부에게 위험하다며 주변에서 극구 말려 국내로 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비행기를 타고 멀리 멀리 떠나고 싶었다.
엄마, 밥 줘.
둘째 아들인 지훈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지금 7시야. 나 지금 안 나가면 지각이라고. 나는 겨우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올해부터 완전히 월경이 끊겼다. 다들 말하던 갱년기가 시작된 것이다. 살이 빠지고 몸에 열이 올랐다.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수험생인 아들을 빈속으로 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다. 지훈이가 내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요새 대체 왜 그래? 나 토스트 먹기 싫다니까. 아빠가 출근하면서 안 깨워줬으면 완전 지각이었어. 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지훈이를 방에서 내보내고 얼굴 한 번 씻지도 못한 채로 부엌으로 내몰렸다. 계란을 부치는데 기름 냄새가 역해서 헛구역질이 났다. 교복으로 갈아입은 지훈이가 가방을 매고 부엌으로 들어오다가 내 꼴을 보더니 토스트에 계란은 안 넣어도 된다고 말했다. 지훈이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잼만 바른 토스트를 입에 욱여넣었다. 엄마, 나 수험생이야. 이제 수능 6개월도 안 남았어. 나는 그런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들의 눈에서 엄마는 집에만 있으면서 도대체 왜 그래? 하는 비난이 느껴졌다. 내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 라는 말 뿐이었다.
올해의 평균 7월 기온은 38도. 아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출근을 하면 나는 아무리 더워도 집 안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나 혼자 누리기에 차가운 바람은 너무 사치였던 것이다. 남편은 내게 올해 유독 날이 더우니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걱정하는 한 편, 전기세에 대해서는 늘 예민하게 반응했다. 첫째 경훈이가 군대에 있고 둘째인 지훈이도 학교와 학원에 있느라 늦은 밤에나 돌아오는데 어째서 매번 공과금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가에 대해 내게 한탄하는 것이다. 남편은 절대 직접적으로 내 탓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점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은 조금만 쉬면 바로 티가 났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노동은 아니었다. 생활비를 주는 것은 남편이었다. 나도 일을 할까, 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면 가족들은 당신이, 아니면 엄마가 무슨 일이야, 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내게 매번 집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서 뭐가 그렇게 힘드냐는 투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열이 오른 몸으로 텅 빈 집안에 있고 싶지 않아 장바구니를 들고 근처 시장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요즘 들어 남편의 회식이 많아진 탓에 저녁을 혼자 먹는 일이 늘었다. 나 혼자만의 식사는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었고, 식재료가 아직 냉장고에 많이 남아 있었지만 집에 머무른다고 해도 청소나 빨래 외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주 건어물을 사러 다니는 시장 아주머니가 거리의 초입부터 나를 발견하더니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말린 홍합 싸게 나왔는데 한 팩 가져갈래? 나는 홍합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아주머니에게 마주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살피더니 혀를 찼다. 얼굴이 말이 아니네. 잠은 제대로 자는 거지? 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그럼요. 제가 힘들 일이 뭐가 있겠어요.
시장 거리를 한 시간이나 배회했다. 반찬으로 살 것이 없어 생물로 나왔다는 오징어 두 마리와 할인하는 아이스크림만 몇 개 샀다. 손에 든 것이 차가우니 몸에 열이 조금 내리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기증이 나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춰서야 했지만 아이스크림이 녹을까봐 쉬어갈 수는 없었다.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한숨이 났다. 날은 정오가 지나고 오후가 됐는데도 뜨겁고 습했다. 땀이 비처럼 등을 타고 흘렀다. 장바구니를 한 손에 질끈 쥐고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앞에 섰을 때 나는 헛구역질을 했다. 오징어가 든 검은 비닐봉지에서 생선 비린내가 더운 바람과 함께 훅 끼쳐 올라왔다. 현관 비밀번호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고작 8자리 숫자일 뿐인데 아무리 생각해 보려고 해도 맞는 숫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리면 어쩌지. 오징어가 상하면 어쩌지.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경비실에 연락을 할까, 하다가 너무 바보처럼 보일까 싶어 그만 두었다. 누가 안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작스럽게 서러운 감정이 안에서부터 복받쳐 올라왔다. 갱년기의 여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건망증과 감정 과잉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이 든 봉지가 무겁게 느껴졌다.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처럼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20대의 나는 이런 삶을 기대한 적이 없었다. 나는 50대가 되면 모든 것이 안정적일 줄 알았다.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 이상적인 가정 안에서 내가 행복할 줄 알았다. 현관 위에 달린 조명등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깜빡거리며 꺼지고 켜지는 것을 반복했다. 나방과 날벌레 몇 마리가 일말의 빛 무리를 찾아 조명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쩌면 내가 들고 있는 생물 오징어의 비린내 때문에 모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꽃이고 자신이 나비라고 했다. 자신은 운이 좋은 나비라서, 나처럼 아름다운 꽃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반지를 건네며 프로포즈를 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주변 어른들은 바람기도 없고 성실한 남편을 보고 그 정도면 훌륭한 사람이지, 라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공무원이잖아, 하며 남편의 직업에 대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내 직업도 아닌 걸.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친구들은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너보다 힘들게 사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저기. 괜찮으세요?
누가 내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내가 들고 있던 모든 것들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내가 돌아보자 군대에 있을 경훈이와 연령대가 얼추 비슷할 젊은 남자 하나가 나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단정한 차림새에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보니 어디로 보나 학생인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떨어트린 것들을 허겁지겁 주워들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눈물이 바닥으로 멈추지 않고 떨어졌다. 아들 나이 쯤 되는 사람에게 이런 추한 꼴을 보였다는 수치심 때문에 아무리 입술을 꾹 깨물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현관의 비밀번호 패드를 가리켰다. 문이… 안 열려서요. 남자는 그런 나를 보다가 내게 잘 접힌 체크무늬 손수건을 건넸다. 조금 진정 되시면 들어갈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봉지에, 아이스크림이어서. 나는 남자가 건넨 손수건을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른 건 오징어고요. 머릿속에서 바보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고개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남자가 작게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나서야 나는 8자리의 숫자를 명확히 기억해냈다. 몇 호 사세요?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냥 손수건을 남자에게 도로 돌려주었다. 남자는 나중에 돌려주세요, 하며 내게 억지로 손수건을 다시 쥐어주었다. 2205호요. 내가 호수를 말하자 남자는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더니 환하게 웃었다. 남자의 웃는 얼굴이 꼭 한밤중의 조명등 같았다. 이웃이네요. 저, 2202호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