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astrophe
  • 2018. 7. 3. 20:35





  • 문을 세 번 두드리면 여는 거야. 그건 이제부터 너와 나의 약속이고, 만약 우리가 서로 싸우거나 감정이 상했더라도 누구든 먼저 서로의 방문을 세 번 두드리면, 그건 화해의 표시인 거야. 알았니, 오스카?

     

    그리고 그가 꿈에서 깨어난다. 자명종은 없다. 옆에 누운 남자의 금발 머리는 분명 채도가 다른 금발임에도 그를 다시 과거로 깊숙이 끌고 들어간다. 그녀는 항상 그와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났다. 둘 모두에게 하루 일과처럼 새벽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또 아이가 아주 어려서 부모의 손을 필요로 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그와 그녀는 새벽 기도에 빠진 적이 없었다. 독실함은 의무 같은 것이었다. 믿음에는 의무가 따랐다. 그는 종종 의무의 무게감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자마자 금발 머리를 짧게 잘랐고, 그는 그녀에게 그것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아이의 눈은 그의 바람과 다르게 회색이었다. 그녀는 아들의 눈이 그와 닮아서 좋다고 했다. 그는 그냥 웃었다.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키사? 이름을 불러 아직까지 자고 있는 상대를 깨워 보지만 상대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과거의 망령들이 제 주위를 돌며 웃는 소리를 듣는다. 새로 시작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는 그냥 웃는다.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발적으로 도망치고 죽은 사람이 되어서, 자신의 장례식에 참여해 우는 가족을 보고도 돌아가지 않았다. 죄책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으며 미국을 떠나온 것도 가족이 거기 있는 것이 불안해서가 아닌 생활이 불편해서, 따위의 이유가 더 컸다. 그런데도 과거와 기억은 스스로 잊자, 라고 말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서 망령이 되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기회가 오면 언제든 자신을 목 졸라 죽여버릴 것 같다는 생각. 허공에 총질을 하거나 누구라도 쏴 죽여 버려서 이 불안감을 해소 해야 겠다는 충동. 그는 살아온 것에 반해 선천적으로 선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탄성을 가진 고무줄을 양극단으로 끊임없이 늘이면 결국에는 튕겨져 나가거나 끊어져 버리는 것처럼 그의 충동은 결과적으로 매번 이성을 이겼다. 넌 언젠가 네 아내도 목 졸라 죽였을 거야. 일종의 경고처럼 망령들이 소리를 지르면 그는 그냥 웃는다. 부정할 수 있는 말이 전혀 없었다. 언젠가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가능성들 사이에서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라고 하기엔 그는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비극이다.

     

    그런데 상대는 그에 대해서 아마 모르는 눈치였다. 어쩌면 알면서도 끝까지 모르는 척 할 사람이거나. 상대는 금발만 닮았지 그가 가진 과거의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새 삶을 시작하자마자 문을 세 번 두드리고 찾아와서는 몸을 섞고 사랑한다 말하고, 그러더니 자리를 잡고 정착했다. 나와 같이 살아요, 그건 그의 또 다른 충동. 망령들이 소리를 지른다. 이건 명백한 배신이야, 일라이. 넌 우리를 배신할 수 없어. 그가 대답하지 않자 다시 소리를 친다. 넌 언젠가 저 남자도 목 졸라 죽이고 말 거야. 그는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생각한다. 저 망령들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토마토를 썰다가 잠시 삐끗해 제 손에 상처를 만들 뻔 했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돌아가 상대를 깨운다. 일어나지 않고 제게 엉겨붙어 오는 따뜻한 체온. 문득 자신이 지난 밤동안 뭉툭한 송곳니로 물어놓는 자국들이 눈에 보인다. 한 손으로 충분할까? 어쩌면 그는 훈련받은 사람이니 양손으로 졸라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는 갑자기 속이 매스꺼워지고, 망령들은 주변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다. 넌 우리를 부정할 수 없어. 그건 그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대는 난잡하다. 천박하고 그의 이전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가 아내 이후로 여러 사람을 만나오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만나왔던 다른 차분한 타입의 여성들과는 금발 머리를 제외하고는 공통된 특징이 전혀 없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저를 거만하게 바라보는 흐트러진 모습. 눈웃음치며 저를 안아오는 모습. 그를 대신해서 상대가 그의 망령들을 부정한다. 보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부정한다. 나는 당신의 마지막 재앙이고 그 이후는 없어. 이성은 그를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충동은 이미 망가진 삶 이 재앙에 몸을 내맡기라고 설득한다. 이 지루한 싸움의 결과는 언제나 충동의 승리다.

     

    알았니, 오스카? 그렇게 물었을 때 그의 동생은 집안 사람 가운데 가장 명확하고 총명한 초록색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생은 그보다 한참 어렸고 그는 언제나 반듯한 얼굴로 먼저 화를 내지 않았다. 문을 항상 먼저 두드리는 건 그의 동생이었다. 어느 날 그의 동생이 말했다. , 이건 꼭 재앙 같아. 그가 물었다. 뭐가 재앙이라는 거니? 동생이 대답했다.

     

    닫힌 문을 두드려 열고,

    그 너머로 들어가는 것 말이야.

     

    당신은 나의 마지막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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