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를 사랑하지>
그녀에게 선물한 장미 꽃다발은 정원에서 직접 꺾어 만든 것이었다. 포장이 서툴러 몇 번 가시에 손을 찔리고 나서야 그럴 듯한 모양새를 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안절부절 하는 하인을 뒤로 하고 스스로 장미를 꺾었다. 매번 손질된 장미만 화병에 꽂았던 나는 장미에 이렇게 잎사귀가 무성히 달려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카체리나는 몇 송이의 장미다발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웃었다. 고마워요, 바냐. 그녀의 흰 보닛 위로 흩어진 장미 꽃잎이 몇 개 날아갔다. 나는 가시에 찔린 손을 뒤로 하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양 헛기침을 했다.
고상한 척 하는 놈들이 으레 나쁜 여자와 곧잘 사랑에 빠진다지? 아버지는 내 속을 긁어놓는 말을 하는 것에 꽤 능숙한 사람이었다. 옆에서 드미트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알료샤는 구석에 앉아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말들을 전부 무시해 버리고는 아버지에게서 보드카 병을 빼앗았다. 그렇게 짐승처럼 사는 이유가 뭐예요? 그러자 아버지가 자기를 가리키며 웃음을 터트렸다. 누구 말이야, 나 말이야? 술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드미트리는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관찰하듯 나와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장 보드카 병을 바닥으로 내팽겨 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너는 가질 수 없는 거야. 그것들은 내가 방으로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알잖아, 바냐. 나는 귀를 막고 대꾸했다. 시끄러. 바냐라고 부르지 마. 손에서 아직도 알코올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는 한 마디씩 첨언을 늘어놓았다. 그건 전부 드미트리 거니까. 아버지가 죽더라도 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카체리나는 너를 선택하지 않아. 그녀도 여전히 드미트리를 사랑하니까. 네가 사랑하는 모두가,
모두가 그를 사랑하지. 너도 알잖아?
<개화>
장미가 몸에서 피기 시작한 것은 그 해 여름부터였다. 등에서부터 피기 시작한 장미들은 나를 끔찍할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게 착상하듯 뿌리를 내리고 가시가 돋친 채로 천천히 붉은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정원의 장미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붉은색이었다. 내 몸에 돋은 장미를 처음으로 본 알료샤는 아름다워, 라고 작게 말했다가 무슨 불경한 말을 내뱉은 사람처럼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한 송이가 피어나자 그 다음은 더 쉽게 자라났다. 나는 왜 내 몸에 장미가 피는지도 모르는 채 이것을 꺾고 또 꺾어내다 결국 가시에 또 손을 찔리고 말았다. 하인을 불러 뿌리 째 도려내 보려고도 했지만 등 깊숙이 뿌리를 내린 꽃의 뿌리는 심장을 뽑아내는 것처럼 끔찍한 고통만 내게 안겨주었다. 하인은 비명을 삼키는 나를 보고 정원 가위를 가져와 장미의 목을 전부 잘라주었다. 꽃잎이 피처럼 흘렀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바닥을 수놓는 붉은 꽃의 무덤을 보자 곧 참을 수 없어졌다. 하인은 내가 우는 걸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한동안 내 옆얼굴을 지켜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장미들을 주워 나가 버렸다.
내 몸에서 장미가 핀다는 걸 가장 늦게 안 인간은 드미트리였다. 거의 집에만 머물게 된 나와는 달리 그는 늘 밖으로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독 집에 장미향이 난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장미가 싫다고 했다. 그건 향이 너무 독하거든.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주위로 몰려드는 여자들에게 장미다발을 선물했다. 사랑을 약속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장미 가시처럼 교묘하게 품에 파고들어 그 안에서 썩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내 등에 피어난 장미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지금까지 선물했던 장미들보다 너한테 핀 게 훨씬 많을 거야. 그는 가시 있는 줄기를 아무렇지 않게 잡더니 내 등에서 한 번에 장미 하나를 우악스럽게 뽑아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자비없이 뜯어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짐승에 가까워야 할 수 있는 행동인가. 등을 타고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순간 비명을 질렀고 하인이 내 비명소리에 놀라 올라왔다가 곧 꺼지라는 드미트리의 말에 문 앞에 멈춰 서는 것이 보였다. 장미를 타고 그의 손으로 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향이 독하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몸에서 피어난 장미 한 송이를 손에 쥐어들고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하인이 내게 달려와 뿌리 째 뽑혀나간 등을 흰 수건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수건이 붉게 물드는 것이 역겨웠다. 처음으로 누군가 내게 피어난 장미를 허락도 없이 꺾어간 순간이었다.
<수확제>
드미트리가 장미를 뽑아 간 자리에선 다시는 꽃이 피지 않았다. 대신 깊은 흉터가 생겼다. 나는 등에 붉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그녀에게 꽃 선물을 하지 않았고 외출도 전보다 삼가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라면 손만 있으면 되는 일이니 차질이 없었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쩐지 조금 두렵게 되었다. 알료샤는 언제나 자진해서 내 등에 피어난 꽃들이 성가시지 않게 잘라주곤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드미트리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내게서 이 꽃들을 뽑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한 번, 그리고 내 등에서 장미가 피기 시작했을 때 두 번. 그렇게 크게 두 번 정도만 내게 주의를 기울였을 뿐 그 외에는 그저 있어도 없어도 좋을 존재로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나는 그에게 꽤 관심이 많았다. 정확히는 그, 라기 보다 그가 가진 것들, 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나는 가난했지만 그는 아니었고 나에게는 그녀가 없었지만 그는 있음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에게 신이나 종교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가치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가 갈구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도 늘 다른 것을 욕망하는 인간이었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가질 수 없는 것들은 꽃처럼 피어났다가 목이 잘렸는데 뿌리 뽑힌 것은 증오가 되어 흉터로 남았다.
다 뜯어내버리면 되잖아.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방으로 걸어 들어와 말했다. 집에서 장미향이 사라지질 않아. 머리가 아파 죽을 것 같다고. 널 죽일 수는 없으니 내가 다 꺾어줄게. 나는 그를 질린 얼굴로 쳐다보았고 하인은 문 너머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점에 신경이 예민했기 때문에 하인을 쫓아냈다. 이후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미트리는 내 조끼를 억지로 벗기고는 와이셔츠 단추를 다 풀기도 전에 옷감이 상할 정도로 거칠게 내 옷깃을 잡아 뜯었다. 너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잖아. 나는 제지하듯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다른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그는 내 허락을 여전히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모르지. 나는 네가 아니니까. 알 수가 없지. 그건 수많은 가시가 박히는 감각과 비슷했다. 내가 차마 두려워 뽑아내지 못했던 것들이 강제로 들춰지고 끔찍하게 바닥을 구르는 것. 그는 내 고통이나 비명 같은 것은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내 등에 몰두했다. 흉터로 남겠지? 그의 어조는 즐겁게 들릴 정도였다. 마지막 한 송이까지 전부 꺾여 나갔을 때야 그는 만족했다. 그의 손은 내 장미 가시로 엉망진창이었고 나는 그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처럼 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가 승리한 야만인처럼 웃었다. 다시는 돋아나지 않을 거야. 잘된 일이지.
<다시, 장미의 계절>
네 몸에서 핀 장미들 있잖아. 내 등은 흉으로 얼룩졌다. 마치 추락한 천사의 날개를 전부 뜯어낸 것처럼 날개 뼈 주위가 특히 엉망이었다. 하지만 다시는 꽃이 자라지 않았다. 그의 말이 옳았다. 뿌리 채 뽑아버려야 몇 번이고 쳐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드미트리는 나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손에 딱딱한 빵 한 조각을 들고 말했다. 아름답더라고. 선물로 주기 좋았어. 나는 그가 나를 조롱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식사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버석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옆에 놓인 술병을 집어 그대로 그의 얼굴 위로 쏟아 부었다. 그는 그 순간엔 당황하더니 곧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죽일 것처럼 내 멱살을 잡았다가, 곧 나를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술에 젖은 얼굴로 그가 내 위로 올라탔다. 식사는 엉망이 되었고 알료샤는 그전과 같이 곤란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와중에도 음식이 잘 넘어가는지 우리는 눈앞에 없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고기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잘 가꿔진 정원처럼 너무 완벽해서 역겨울 지경이었다.
왜 아직도 장미향이 나지?
그가 내 뺨을 쳤다. 나는 고개가 돌아간 채로 웃었다. 장미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었을 카체리나를 생각하니 속이 뒤틀렸다. 어쩌면 그녀는 그것으로 코사지를 만들어 가슴에 장식하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더러워. 나는 손에 힘을 줘 그의 어깨를 밀쳐내면서 소리쳤다. 너도 똑같이 더러운 새끼야. 그는 밀려나면서도 욕설만 지껄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장미가 자라? 순수한 궁금증이 서린 얼굴을 하고 그가 물었다. 왜, 다시 꺾고 싶나보지? 내가 맞받아치자 그가 제 손을 들어보였다. 손에는 가시에 찔린 상처들이 가득했다. 저걸 내 몸에서 나온 것들이 만든 거라고 생각하니 아주 짧은 순간만 유쾌해졌다. 다칠 가치가 있긴 했지. 더러워, 내가 중얼거리자 그가 들뜬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그걸 전부 꺾어준 건 나밖에 없잖아, 이반. 그는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늘 다른 것들을 찾았다. 전쟁에서 야만인이 승리한 적 없지만 이곳은 전쟁터가 아니어서, 그는 늘 승리했다. 그가 내 팔을 잡았다. 등이 아팠다. 다시 무언가 돋아나는 것처럼, 가시가 박혀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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