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ubis
  • 2015. 6. 29. 00:04




  • 이것은, 너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언제 만났더라. 16살? 17살? 나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뭐 그런 것이 중요하겠냐마는. 나는 그 남자 옆에 붙어 있었던 내 또래의 나보다 조금 작은 소년이 지금의 아누비스가 될 때 까지 알아왔다. 네가 담배를 피우던 것을 기억한다. 무슨 시가였는데, 너에게 이름을 듣고도 나는 자꾸 까먹어. 어쩌면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하는건지도 모른다.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으니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 남자의 이름이라던가. 화재라던가. 그도 아니면 너에 대한 것들.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지. 담배를 끊고 마약을 끊었던 것처럼 나는 내가 미련을 가질만한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기억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나는 네 곁에 남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다. 담배나 마약이나 도박 같은 것들을 그만 둔다고 해도 이미 더럽혀진 손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네 곁에 남는 것이 두려웠다. 같은 사람의 피를 뒤집어쓰고서 어떻게 그렇게 얼굴 표정 한 번 바뀌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속일 수 있는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뒤집어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가 없다. 나는 네가 나를 먼저 떠나는게 두려웠다. 두 번의 파양은 내게 약간은 이상한 공포심과 경각심을 세워주었다. 나는 네가 나를 먼저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또 버려질 수는 없어.


    외롭지 않기 위해서, 나는 외로워져야 했다.
    너도 그랬다. 떠나지 말라고 너는 내게 소리쳤고 나는 그냥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외로워졌다.


    *


    우리 조금 시간을 돌리기로 하자. 그래. 내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전부 내 탓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정말로 전부 내 탓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너를 보니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내가 죽어도 너는 저만큼 울까?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게 많이 궁금했다. 너는 그 남자만큼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걸까? 그래서 남자의 죽음에 나는 우는 너와 달리 지나치게 초연했다. 오히려 내가 슬픈 것은 이제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네가 그 남자, - 나는 아직도 그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를 믿고 사랑했던 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 잘못 때문에 네가 나를 떠날까봐 무서워졌다. 절대적인 사랑없이, 누가 내 곁에 오래 있어줄 수 있을까.

    외로워 지지 않기 위해 외로워져야한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말인지를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의 질식할 용기가 없어 악착같이 살아가던 그 시절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나는 늘 여유로운 척 굴었고 상냥하게 모든 사람들을 대했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서 등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내가 먼저 버리지 않으면, 내가 먼저 버림받을테니까. 내게 주어진 행복에도, 불행에도, 미련을 가지지 말자. 그런 것은 곧 언젠가 전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 진심이 되지 않는 것.

    너는 마치 내가, 너를. 나만이 너를 망가트린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떠나고 나서 너를 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했다. 우리가 영원히 만나지 말았어야했는데. 하필 네가 코사 노스트라로 올 줄이야. 대뜸 히트맨으로 전직하는 것도 보았다. 내게 이를 드러내고 너는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것도 나는 다 들었다. 너를 잊으려고 내 무의식은 끝없이 노력해왔다. 나는 네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너는 나보고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네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방어기재는 생각보다 아주 약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졌다.

    아무나 파도가 될 수 없으니 내 모래성을 무너트리지 못했지만
    너는 적어도 내게 꽤 위협적인 파도였던 것이다.


    *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도 나는 너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너를 만날 것이고, 다시 게임에 참여할 것이며 네가 보는 앞에서 자살에 가까운 도박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서 네가 곧 죽을 것이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돌아서 그러지 말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대체로 아주 안정적인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균열이 간 유리창도 멀리서 보면 아무렇지 않은 새 유리창처럼 보이듯이 나도 그랬을 따름이었다. 나는 균열이 간 유리창이었다. 나는 이미 반쯤 부서져 있었다. 내게 결여된 것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나는 멀리 멀리 도망쳤다. 내 미묘한 감정적 결여와 가벼운 말들. 내 부서진 파편들이 널 찔렀다는 것을 안다. 너는 피를 흘리면서도 내 균열을 안으려고 했다.

    나는 네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혼자서도 버틸 수 있지, 우리 개? 네가 견뎌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너는 내 가벼운 말을 더 이상은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간절한 것이 없었는데. 죽고 나니 네가 죽을까봐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 간절히 한 번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따라 죽지 않기를. 네가 견뎌내기를. 번개가 너를 관통했을 때, 나는 이미 죽어 있었는데도 고통을 느꼈다. 네가 곧 죽었다. 게임은 패배였고 나는 내 죽음 전에 유서를 쓰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미련을, 남기지 말아야지.


    다시 살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네가 다시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곧 죽을 것이다. 하는 너의 말이 날 아프게 한다. 나는 심약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상처입는 것이 싫어 먼저 상처를 주고 도망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심약하지 않다면 도대체 그 누구를 심약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파도 앞에 곧 무너질 모래성. 나는 가까이서 본다면 균열이 완전히 간 유리창. 너는 파도가 되고 너는 자꾸만 날카로운 날 끌어안아 피를 내고, 나는 그런 너에게서 멀어지려고 하고. 그러다가 지친 네가 곧 죽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나는 파도가 치지도, 네가 날 끌어안지도 않았는데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그래.
    나도 곧 죽을 것이다.

    네가 먼저 나를 떠난다면 나는 산산히 부서져 죽을 것이다.
    너는 내게 파도 치지도 않고, 너는 나를 끌어안지도 않았지만

    나는 산산히 부서져 죽는다.



    *



    너는 내가 왜 더 이상 내 최초의 이름을 궁금해하는지 모른다.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심이 된 말들은 속으로 눌러담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너에게 사랑해. 라고 말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가시에 찔리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당연히 이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란테라고 부르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네 이름을, 부르고 싶지가...


    네가 나를 란테라고 부르니
    나는 란테로 죽겠다.

    나는 네 이름을 부르고 싶지가 않다.
    부를 때 마다 자꾸 미련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말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지나치게 외로워졌다.


    *



    미련이 없는 사람이, 가장 잔인한 사람이다.
    나는 네 앞에만서면 잔인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나는 너를 위해
    나를 죽일 수 있다.


    나는 네 이름을 안다.

    진심은 너무 무거워 말할 수가 없다.

    사랑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테지.
    나는 다시 무너진다. 백사장의 모래알로, 어느 한 유리조각으로.


    곧 죽는 너에게로
    나도 곧 죽어서 와르르 무너진다.

    그게 내 진심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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