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IND
  • 2015. 4. 23. 20:53






  • 여보세요.
    네. 제가 젤다 이에하츠입니다.

    네?
    버먼씨요? 네... 잘 모르는, 아.

    아주머니.


    *



    10대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10대 후반의 저는 이러저러한 것들로 몸도 정신도 지쳐있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종종 날카로운 말들로 저를 찔렀습니다. 가시같은 말들이 몸에 박히어 제 몸에는 여러 갈래의 상처가 났습니다. 젤다. 멍청한 기지배. 그렇게 말했던 어떤 여자아이를 원망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첨예하게 찔린 제 어깨나 등이나, 어쩌면 심장을 붙들고도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아이를, 아이들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말이 어쩌면 옳은 말일지도 모르니까요. 누구를 비난하기에는 저는 이미 너무 많이 찔려 비난의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심장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빵집의 아주머니는 만신창이가 되었던 제 10대를 버틸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셨습니다. 결단코 다정하신 분은 아니었어요. 너는 왜 그렇게 울고 있니. 거기서 울면 더 못생겨진다. 그렇게 말하며 따뜻한 코코아를 타 주시던 분이셨지만 한 번도 제게 환하게 웃어주신 적은 없는 분이셨습니다. 굳은 입매와 딱딱한 인상, 괴팍한 말투로 악명이 높은 분이셨거든요. 젤다. 그렇게 침울해 하고 있지만 말고 들어와서 일이나 도와라. 또 혼자 질질 짜려고 하니. 다정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길거리를 걷다가 받은 코코아 한 잔이 너무 따뜻해서, 정말 달콤해서, 저는 아주머니의 가게로 걸어들어 갔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거란다.
    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고, 온통 마음에 안드는 일과 사람들만 가득하지.

    ...제가 의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꼭 그래야하는 건 아니잖니.
    저기 저 지나가는 머리 빈 여자애들을 보렴. 저런 애들도 다 의미없이 산단다.



    아주머니는 저를 당신의 가게에 부엌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온통 밀가루들이 날리고 베이킹 파우더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그 공간에서는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오븐에서는 케이크가 구워져 나왔고 갓 만든 따뜻한 쿠키가 식힘망 위에 놓여져 제 몸을 굳혀가고 있었습니다. 달콤한 초콜릿 청크의 냄새와 말린 과일들의 향이 코를 간지럽혔습니다. 말이나 행동과는 다른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머랭을 휘젓던 아주머니가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젤다. 반죽이라도 해보던가.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전 잘 하는게 없는데... 아주머니는 그렇게 대답하는 저에게 빽 소리를 쳤습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말부터 하면 정말 쓰레기가 되는거야!


    해보지도 않고 네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아니?


    처음 만들었던 쿠키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시중에 파는 것만큼 고급스럽지도 않았고 아주 맛있지도 않았지만 아주머니는 저에게 잘했다고 해주셨습니다. 그 잘했다는 한 마디가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이어서, 저는 처음 만들었던 쿠키를 차마 다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며칠동안이나 놔 두었습니다. 그 달콤했던 맛과, 입 안에서 씹히던 초콜렛 조각들의 딱딱했던 부분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던 순간을 저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젤다. 봐봐. 잘 할 수 있잖니. 아주머니는 무뚝뚝한 얼굴로 제게 체리 몇 알을 건넸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체리를 한 알 삼키고, 입에 우물거렸다가, 다시 또 체리 한 알을 삼켰습니다. 손과 입에 붉은 물이 들었습니다. 약간 덜 익었는지 시큼하고 달큼한 체리향이, 체리의 어설프게 붉은 과즙이 손과 입 안에 가득 묻어났습니다.


    첨예하게 찔린 가슴을 묻어두고 저는 당신의 그 체리나무에 기대어 수 많은 가시에 찔렸던 시기를 버텼습니다. 별 의미 없이 아주머니가 제게 건넸던 그 체리 나무 묘목이 몇 년이 흘러 처음으로 체리 열매를 맺었을 때 저는 떨리는 손으로 체리를 수확했습니다. 한 알 입으로 넣어 우물거렸던 그 체리의 맛은 몇 년 전 당신이 제게 몇 알 쥐어 주었던 그 체리의 맛과 같아서 저는 홀로 아파트 정원에 주저 앉아 조금 울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셨습니다. 빵을 어떻게 굽는지, 쿠키 반죽을 어떻게 하는지, 뜨개질 모양을 어떻게 하면 잘 잡을 수 있는지, 정원의 꽃들이 어떻게 하면 더 생기있게 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전부 아주머니에게 배웠던 것들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저에게 당신의 가르침은 그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는 원천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어쩌면 아주머니가 제 온 평생을 그렇게 그 거리의 빵집 주인으로 살아가실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식도 없이 당신의 가게 문은 그렇게 닫혀 있었습니다. 저는 닫혀있는 당신 가게 앞을 기웃거렸지만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래요. 아무도 거리에 하루종일 서 있던 저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내밀며 또 혼자 뭐하냐고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 없이 떠나셨습니다. 아주머니의 가게가 헐리고 새로운 가게가 생겼습니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그 위치에는 몇 개의 가게가 그렇게 왔다가 떠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전 아주머니의 성함도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아주머니는 순식간에, 어떠한 예고나 암시도 없이 저를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지탱할 곳이 없어서
    저는 제 몸에 박혀있는 가시에 저를 지탱했습니다.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자, 제 몸에 박혀 있던 그 수많은 가시 돋힌 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제 몸에서 하나 둘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기다란 가시들로 제 몸을 지탱하면서
    스스로의 가시에 스스로 찔렸습니다.


    *




    - 젤다 이에하츠씨?

    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물어도 될까요?

    - 네. 혹시 시간되면 버먼 부인을 만나러 오실 수 있습니까?
    부인이 젤다씨를 찾으셔서요.

    버먼... 모르는... 아.
    아주머니.


    *



    몇 년 만인가요. 이게. 저는 그제서야 당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리엘이 화장을 해줬어요. 저는 아직도, 화장을 하는게 어설프고 어색했거든요. 원피스는 저번 휴가 때 산 것입니다. 사 놓고 조금 후회 했었어요. 그냥 보기에 너무 예뻐서, 저런 옷을 한 번 쯤은 입어보고 싶었어서 덜컥 사버리기는 했지만 저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저는 여전히 비슷합니다. 갈색머리도, 갈색눈도. 평범하게 생긴 얼굴도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았어요. 아주머니. 그렇지만 당신을 만나서 꼭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전 잘 지내요. 잘 지내셨나요. 꽃다발의 장미들은 전부 제가 아파트 정원에서 키운 거에요. 아. 이건 제가 만든 쿠키에요. 아주머니가 만드셨던 것 같은 맛은 어떻게 해도 나질 않던걸요.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설레어 하며 새벽에 당신을 만나러 길을 나섰습니다. 꽃다발을 받으면, 쿠키를 전해 받으면, 아주머니가 저에게 무슨 말을 하실지가 저는 정말 궁금했어요. 저를 기억해주시고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도. 그래요.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멍청한 기지배라고 부르던 그 여자아이들도, 아니면 제가 그 모든 잔인한 말들을 견딜 수 있도록 저를 지탱해 주었던 아주머니, 당신도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머니와의 직접 통화는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아주머니와 관련이 있는 듯한 사람과의 몇 번의 통화 끝에 약속을 잡았습니다. 네. 거기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전화는 조금의 간격을 두고 뚝, 끊겼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젊은 여자는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상하고, 어쩐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그 약속 시간에, 그 장소에 서 있었습니다. 장소는 병원이었습니다. 저는 병원 로비에서 30분을 서성였습니다. 주변에는 온통 아픈 사람들과 그 아픈 사람들의 가족이 슬픈 표정으로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 사이에서 홀로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간호사 한 분이 그제야 다가와 저에대해 묻더군요. 젤다 이에하츠입니다. 하고 이름을 말하자 그제야 간호사분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버먼씨를 만나러 오셨군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젤다씨. 전화는 제가 드렸어요. 간호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간호사는 제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쳐다보았습니다. 젤다씨. 버먼씨는 면회가 제한되어 있고, .... 또 면회동안에는 물건을 반입할 수 없어요.


    버먼씨는
    9층, 정신과 병동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



    아주머니. 당신을 몇 년 만에 만난 저의 감상은 이것이었습니다. 슬픔. 그것도 아니면 비통함. 몇 년이라는 세월이 당신에게는 길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9층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속에서 올라오는 수 많은 질문을 삼키느라 애를 써야만 했습니다. 어째서 아주머니가 정신병동에 입원해 계시는 거죠? 하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차고 넘쳐 흘렀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저는 꽃다발을 두고 와 비어버린 제 손만 내려다 보았습니다. 감정이 불안해서인지 잔가시들이 금세 제 손에 제어되지 못하고 듬성듬성 돋아났습니다. 혹여나 간호사분이 제 손을 보실까 싶어 저는 주먹을 쥐었습니다. 손바닥에 돋아난 잔가시에 찔려 제 손에는 또 상처가 생겼습니다.

    왜 그렇게 늙으셨습니까. 잘 지내셨나요. 라고 묻고 싶었던 저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가 없엇습니다. 굳은 입매와 퉁명스러운 표정은 여전하셨지만 언제 그렇게 당신의 머리에, 베이킹 파우더같은, 밀가루의 잔해 같은 세월이 스쳐지나 갔던지. 간호사분은 그런 아주머니 앞에서 제게 속삭였습니다. 제정신이 돌아오실 때면 젤다씨를 찾으셨어요. 지금은... 네, 알아보지 못하실지도 모르지만. 아주머니와의 재회는, 그러니까 말로하자면, 슬픔과의 재회였습니다. 한 때 든든하게 저를 받쳐주었던 사람이 무너져버린 것을 봤을 때의 참담함이 이런 것일까요. 아주머니는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따로 자식도 가족도 없이 그저 스스로 병이 발병하자마자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만을 전해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아주머니.

    - 어...어어...

    절 기억하세요?

    - 어...어어어...

    젤다에요.
    젤다, 젤다 이에하츠.




    당신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결국 울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기억조차 하지 못하실테지요. 침대에 누워 그저 어어, 거리며 시선조차 저와 마주치지 못하는 당신을 두고 저는 면회 시간 내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젤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거란다. 늘 마음에 안드는 일과 사람들만 가득하지. 그렇게 말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한데. 그 몇 년 사이에 당신에게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아주머니가 손을 뻗어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놀라 파드득 손을 빼냈지만 이미 아주머니의 손도 가시에 찔렸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왜 아주머니가 제 손을 붙잡으려고 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제 가시에 제가 스스로 찔려서, 제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손도, 제 가시에 찔려 피가 흘렀습니다. 아프지도 않은지 아주머니는 또 제 손을 붙잡으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신이 또 제 가시에 찔릴까 두려워 무슨 말도 못하고 당신으로 부터 멀어지기만 해야했습니다. 아리엘이 기껏해준 눈화장이 아깝도록, 저는 또 울었습니다.

    어어. 어. 아주머니가 멀어지는 저를 보고 뜻 없는 소리만 내셨습니다. 저는 너무... 네, 너무 슬펐습니다. 그저 당신을 끌어안아주고 싶을 뿐이었는데. 꽃을 건네고 제가 키운 장미에요. 쿠키를 건네고, 당신에게 배웠던 방법 그대로 만든 쿠키에요. 잘 지내셨어요. 그렇게 몇 마디 대화를, 오랜만에 나눠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는데. 원피스의 옷자락에 눈물을 닦아내며 저는 멀찍이 서서 당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당신의 손에서 흐르는 피가 유독 붉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제 몸에서
    가시가 돋아서

    당신을 안아줄 수가 없어요.
    지탱해 줄 수가 없어요.
    잘 지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요.


    *

    젤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거란다.

    왜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부터 하니.




    하지만, 아주머니.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요.
    한 번 당신을 끌어안는 것조차 가시돋힌 몸으로는 할 수 없는걸요.


    *


    돌아가는 길에 제 장미 꽃다발을 버렸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었으니까요. 쿠키도, 버렸습니다. 어떤 의미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결국 10대 후반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26살의 봄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무력하고 멍청했으니까요. 우느라고 지워진 화장 때문에 아리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부탁해서 받았는데, 이렇게 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하지 않고 오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기야, 이제와서는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된 의미를 낼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저를 기억해주었던 마지막 한 사람조차, 제가 기댈 수 있었던 마지막 한 기둥조차 저렇게 무너져 버렸는데.


    저는 결국 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못한 겁니다.

    멍청한 젤다,
    젤다. 멍청한 기지배.

    가시 돋힌 몸으로는 아무도 껴안아줄 수 없을테니까요.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저를 지탱해주던 그 지지대조차.

    저는 한 번 끌어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



    옛날에. 그러니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하나 사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너무 아름다웠으니까요. 사랑이 어떻게 나에게로 왔는가. 나는 본다. 네가 밤 속을 걸으며 꽃 송이 송이 마다 입맞추는 것을. 구절 하나하나가 음율처럼, 피아노의 조화로운 선율들처럼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글자들이 모여 빛나는 시가되고 문장들이 모여 빛나는 문단이 되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소리 내어 시인의 이름을 불렀을 적에, 저는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다니, 꽤 로맨틱한 죽음 아니냐. 하고 말하시던 아주머니의 호탕한 목소리와 어딘지 괴팍한 모습이 제 기억 속에 아직도 선연합니다. 그 남자는 장미 가시에 찔려 그 아름다운 단어들과 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에 찔려 가장 아름답게 죽었으나 더 이상 그 어떤 아름다움도 생산해낼 수 없었던, 그 시인에 대해서. 저는 나이가 든 지금 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손에서, 그 다음에는 계속 다른 어딘가에서 가시가 돋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흉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숨어들어 펑펑 울었습니다. 화장이 번진 눈에서는 화장품 색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가시 돋힌 손으로 제 흐르는 눈물을 닦을 때 마다 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물이 흐르는 것이 멈추지 않아서 저는 그저 계속, 그 날카로운 가시가 돋힌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야했습니다. 눈 아래 쪽 피부가 긁혀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심장 부근에서, 어깨에서, 목 옆 쪽에서 기다랗고 커다란 가시들이 자라났습니다. 피우고 싶지 않았는데도 가시들은 그렇게 피어났습니다.


    피가 섞인 눈물이 화장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약할까요. 저는 왜 이렇게, 견디지 못하고. 왜 이렇게 고통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저는 왜 이렇게 상처에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고 누군가를 상처입힐게 두려워 사랑한다 말 한 번 못하고. 지지해주었던 아주머니를 한 번 끌어안지도 못하고. 압니다. 제 이 가시를 피우는 능력이 제가 가진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값어치 있고 쓸모있는 능력이라는 것을요. 전 제 능력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저를 찌르던 말들이 제 몸에서 피어나는 것 뿐인 걸요.


    *


    끝없이 눈에서 피가 납니다. 고통스럽네요. 손에 난 잔 가시가 사그러들지 않습니다. 아인씨가 문 앞에서 저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체리를 가져오지 못했는데. 들어던 생각은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에서 피를 흘리며 앞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흐릿하게나마 붉은 색으로 보이던 앞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온통 암흑이었습니다. 온통. 온통, 암흑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제 몸에 피어났던 가시가 하나 둘 스러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아.
    왜 릴케가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는지 저는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꽃 피우지 못할 바에는 꽃에 찔려 죽는 것이 더 아름다운 죽음 아닙니까.


    *

    아주머니.

    살아간다는 것은 이토록
    스스로의 가시에 잔인하게 찔리는 것이군요.

    저는 눈을 감습니다.
    어쩌면 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무것도.






    ....괜찮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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